내가 오릿을 만난 건 6월의 마지막 주였다. 아이를 학교 안으로 보내고 학교 앞 사거리를 건너던 아침 8시. 옆을 지나가던 외국인 여자가 길을 물었다. 그녀는 손에 든 구글맵과 정반대로 걸어오고 있었다. 감이 왔다. 길치 여인. 그녀의 질문은 간단했다. 뮌헨의 중앙역은 어디인가. 그 정도의 질문에는 대답이 가능했다. 뮌헨 짬밥만 벌써 반년 아닌가. 네가 걸어온 방향은 역방이니 다시 돌아가라. 앞쪽의 빅투알리엔 시장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꺾어라. 거기가 마리아 광장. 쇼핑 거리를 직진. 끝에 나오는 건 카를 광장. 멈추지 말고 좀 더 전진하면 중앙역. 오케이?
50 정도로 보이는 중년 여인은 이스라엘에서 왔다고 했다. 오, 이스라엘! 두 광장을 알고 있다는 그녀와 헤어지고 글 쓰는 카페를 향하다가 든 생각. 마리아 광장까지만 동행해 줄까? 그쪽 서점에 주문할 책도 있는데. 뛰어가 그녀를 불렀다.
그녀의 이름은 오릿. 빛이란 뜻이란다. 나는 고요할 정. 걸어가며 그녀와 통성명을 했다. 뮌헨에 있는 이스라엘 친구 집에 묵고 있단다. 친구가 바빠 그날은 혼자서 잘츠부르크에 다녀올 생각이란다. 이렇게 씩씩한 여인이 있나. 그녀의 독립심이 맘에 들었다.
잘츠부르크를 다녀오려면 서두르는 게 낫겠다. 마리아 광장 지하에서 S반으로 가면 두 정거장. 그녀와 같이 내려가서 차표 사는 걸 도와주고 탈 방향을 알려주었다. 오릿이 묻는다. 내일은 뭐하니? 그러는 너는? 난 뮌헨의 문학 산책 같은 걸 하고 싶은데 어디를 가야할 지 모르겠어.
뭐, 문학? 너, 내일 다시 보자. 오, 정말? 넌 하늘이 내게 보내준 천사야! 오릿, 내일 아침 8시 반에 마리아 광장으로 나와. 잘츠부르크 잘 다녀오고. 다음날 아침 요가 수업이 있다는 건 까맣게 잊고 내가 말했다.
뮌헨에서 특정 문학가 하우스는 나도 찾지 못했다. 대신 뮌헨 토박이 시누이도 잘 모르는 아주 작은 박물관 안의 토마스 만 전시관은 가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번쩍 떠오른 곳은 2월부터 7월까지 전시 중인 파우스트 특별 전시관.
다음날 오릿을 데리고 구글맵을 보면서도 나는 약간 헤맸다. 오릿이 불안하지 않도록 자주 길을 물었다. 도중에 뜻밖의 선물처럼 나무들이 빽빽한 미로 같은 공원 호프가든을 발견하기도 하고, 건장한 말을 탄 남녀 경찰관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의 걸음이 멈추지 않은 것처럼 문학 얘기 또한 끝이 없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그녀는 셰익스피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뮌헨의 우리 문학 모임에서 첫 책으로 <햄릿>을 읽는다고 하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셰익스피어 덕분에 우리의 만남은 우연의 범주를 벗어났다. 작년 여름 혼자 런던을 여행할 때의 이야기도 들었다. 비 오는 날 텅 빈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에 섰을 때 눈물이 나더라고.
올봄부터 파파가 읽어주는 해리포터에 푹 빠진 우리 아이를 위해 런던 시내에서 무료로 열리는 해리포터 순례기에 대한 팁도 잊지 않았다. 우리의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에서 시작해 몇몇 작가들을 돌다가 셰익스피어로 끝났다.
그녀와 헤어진 건 파우스트 전시관 앞에서였다.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진심으로 그날 오전의 문학 산책을 즐겼다. 토마스 만도 셰익스피어도 좋았지만 중년의 외국 여자를 만나 문학으로 의기투합하는 경험 역시 즐거웠다. 그녀는 장성한 두 아들 이야기를 했고, 나는 뮌헨에서 살게 될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제 다시 만나자, 한번 놀러 와, 빈 말은 던지지 않았다. 그런 일이 20대나 30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다시 만나고 못 만나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날 서로의 발자국 위로 빛나던 문학 이야기만은 나이테처럼 마음에 새겨졌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