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있다면 왜 나를 위로해주지 않지?

편지 15

by 뮌헨의 마리


"엄마, 신은 없는 거 같아!"




그리운 샘!


자카르타의 날씨는 어떤가요. 짐작하건대 무덥고 습하겠지요? 뮌헨은 얼마나 날씨가 좋은지 완연한 가을이에요. 독일에 와서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과 조우하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꿈도 꾸지 않았는데, 간절한 바람이 현실이 되었네요. 매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행복해한답니다. 한낮의 온도가 19~20까지 올라가요. 다음 주까지 이런 날씨가 계속될 전망이에요. 서울은 기온이 많이 떨어졌나 봐요. 다음 주에 샘이 돌아오시면 벌써 쌀쌀해져 있을지도 몰라요.

어젯밤 파파와 신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나누던 알리시아가 엄마를 욕실로 불러 조용히 문을 닫고 이런 고백을 하더군요.

"엄마, 신은 없는 것 같아!"

웃음을 참으며 진지하게 물어봤어요. 도대체 왜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알리시아 학교는 가톨릭 재단이라 종교 수업이 주 3회나 있답니다. 영어 수업도, 체육 수업도 주 2회뿐인데요. 좀 과하단 생각이 들지만 이 학교에 다니는 한 피할 수가 없네요. 종교는 가톨릭과 개신교 두 개로 나누어서 선택을 하도록 하는데 종교에 관심이 적은 엄마 아빠는 알리시아가 어느 반으로 갔는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아마 가톨릭 반인가 봐요. 이번 주에는 수업 시간에 신에게 주는 질문을 작성했나 봐요. 알리시아는 도대체 어떤 질문을 신에게 날렸을까요?



알리시아의 고백을 들은 후 다음과 같이 10가지로 정리해 봤어요.

1. 신이 있다면 왜 학교에서 친구들이 나랑 안 놀아줄 때 걔들에게 나랑 놀아주라고 하지 않나. 내가 놀아달라고 했을 때 아무도 안 놀아줬다.
2. 신이 있다면 왜 내가 슬플 때 나를 위로해 주라고 아무도 안 보내주나. 아무도 위로하러 안 왔다.

3. 왜 나쁜 사람이 있나.

4. 전쟁이 일어나면 신은 어디에 가 있나.

5. 왜 죽은 사람은 다시 태어나지 않나.

6. 신은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나.

7. 신이 있다면 불행, 슬픔, 아픔, 전쟁, 이렇게 나쁜 물건들이 왜 많이 있나.

8. 왜 신이 나한테 좋은 일을 안 해 주나.

9. 왜 매일 꼭 울어야 하나. 왜 꼭 슬퍼야 하나. 어젯밤에도 울고, 저번에도 울었다.

10. 왜 가난한 사람이 있나. 밥도 못 먹고, 집도 없는 사람들이.


그리고 이런 질문이 이어졌어요. 진짜로 궁금한 거라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엄마랑 아빠가 만나서 결혼해서 내가 나왔을까. 다른 아이가 나올 수도 있었잖아. 왜 내가 나왔어?"
"글쎄, 그런 걸 신에게 물어봐야지."
"그렇네. 신이 없으면 누구한테 물어보지?"


고민이 깊었는지 금세 피곤해져서 침대로 가자마자 불도 끄지 않았는데 잠이 들더군요. 엄마는 알리시아의 고백을 정리하느라 잠도 못 자고 바빴고요. 잊어버릴까 봐서요. '신이 있다면 왜 내 슬픔을 위로하러 아무도 보내주지 않을까.' 자꾸 엄마의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입니다. 아무도 위로하러 보내줄 필요가 없다는 걸 크면 알게 될까요. 슬픔은 슬픔 자체로 우리 삶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비로소 어른이 되겠지요.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따라 여러 갈래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요. 결국은 혼자라는 답에 도달하는 게 전부라는 것까지도요.


샘. 무사히 귀국하셔서 자카르타의 풍경 들려주시길 기대할게요.




p.s. 오늘이 제 브런치 글쓰기 100일째였어요. 다음 목표인 1년을 넘어 500일과 1000일까지 분발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