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어요. 지난 3주 동안 황금 같은 가을을 만끽했답니다.
그리운 샘.
시월의 넷째 주인 이번 주는 시작부터 기온이 12도로 떨어졌어요. 어제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어요. 지난 3주 동안 황금 같은 가을을 만끽했답니다. 얼마나 축복 같은 시간이었는지 몰라요. 독일의 가을 치고는 너무나 근사했어요. 뮌헨의 첫가을을 못 잊을 거예요.
월요일에는 세 번째 글쓰기 카페를 찾았답니다. 스타벅스에서 보낸 세 달에 비하면 카페 이탈리에서의 6개월은 길어도 너무 길었지요.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면 매너리즘에 빠질까 염려가 돼서요. 카페 이름은 카페티노 Caffettino. 집과 학교의 가운데예요. 집에서 시내 방향으로 지하철로 한 코스고요. 알리시아랑 날마다 걸어 다니거나 지하철을 타고 오던 바로 그 길이에요. 이자르강을 따라 걷다가 다리를 건너면 책방과 꽃집과 우체국과 빵집이 나오죠. 그리고 지하철역 사거리 맞은편에 여행사가 있고요. 카페는 바로 그 옆이에요. 그동안 한 번도 안 와 본 카페인데 월요일 우체국 문 여는 시간을 기다리다 들어와 봤어요.
밖에서 본 대로, 생각한 대로, 아주 아주 작은 카페였어요. 당연히 테이블이 많지 않아요. 주문대 맞은편 벽을 따라 둥근 2인용 테이블이 몇 개. 거리 쪽 창가에 3인용 테이블이 하나 있고요. 오시는 분들은 주로 나이 드신 동네 분들이에요. 주인장과도 안면이 많은지 주인장과 손님들 간에 대화가 끊이지 않네요. 제가 얼마나 오래 다닐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오전 시간만이라도 머물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단골이 되고 싶어도 카페 사정이 허락해야 하니까요. 주인장의 인상은 좋아 보이네요. 아직 중년이 안 된 남자예요. 여름엔 카페 밖에도 테이블을 몇 개 두었는데 제가 궁금한 건 이런 거예요. 내년 봄 바깥에 앉을 때까지 이 카페에 다닐 수 있을까?
아참, 깜빡했네요. 카페에서 학교 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유유미라는 한국 분식점도 하나 있답니다. 겨울에 거기서 뜨거운 돌솥 비빔밥을 먹을 수 있죠.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갈 곳이 있다는 건 여간 안심이 되는 게 아니에요. 한국 음식에 대한 알리시아의 향수도 달랠 수 있을 테니까요.
어제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 꽃잎을 주웠답니다. 바람이 제법 불어서 꽃잎이 많이 떨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손에 넣은 건 총 다섯 송이였어요. 나머지 꽃잎들은 바람에 날려 건물 안마당 쪽으로 넘어가 있더군요. 철문이 닫혀있어 손을 뻗어도 닿지가 않을 것 같았어요. 닿을 듯 닿지 않는 꽃잎들이 왜 더 찬란해 보일까요. 애초부터 둘 다 제 것이 아니었는데요. 베란다에 나와 있던 꽃나무도 추위를 대비해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더군요. 정말로 마지막 꽃잎이었어요. 언제나 올려다보던 이웃집 베란다가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아쉽지 않았어요. 내년 봄에는 다시 꽃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람 뿐 아니라 꽃들의 이치 역시 헤어져야 다시 만나고, 만나면 다시 헤어지나 봐요. 견디고 못 견디고는 그다음 문제고요. 견디는 건 꽃나무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일 지도요.
오늘 아침엔 요가를 다녀왔어요. 지난주엔 다 나은 줄 알았던 클레멘스의 감기가 다시 심해지는 바람에 요가도 포기하고 알리시아를 학교에 보낸 후 바로 집으로 달려갔답니다. 독일에 온 이후로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걱정이었는데 역시나 면역력이 떨어졌나 봐요. 요 며칠은 아침에 빵 대신 뜨거운 국을 마시게 했더니 조금 좋아졌어요. 오늘 요가엔 저와 독일 아주머니 한 분이랑 두 사람밖에 없었답니다. 선생님 말씀이 회원들이 감기에 많이 걸렸대요. 우린 감기 안 걸려서 천만다행이야, 수업 전에 선생님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답니다.
샘. 자카르타에 다녀오신 이후로 계속 몸이 안 좋으시다는 말씀 전해 들었어요. 요즘은 좀 어떠세요. 그래도 어제 모임에서는 원기를 되찾으셨는지 목소리가 여전하시더라는 후기는 들었어요. 언니의 그 한 마디에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요. 잠은 좀 주무시는지, 밤 사이 통증은 여전하신지, 언제나 샘의 안부가 궁금하답니다. 독일도 다음 주엔 기온이 10도 이하로 뚝 떨어진다고 해요. 사람들은 벌써 겨울 외투를 꺼내 입고 다니네요. 한국도 많이 쌀쌀 해졌겠지요? 올 겨울도 부디 잘 견디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