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과 함께 오후의 산책

편지 17

by 뮌헨의 마리


오후의 산책을 했어요. 이어폰을 끼고 퀸의 노래를 들었어요. 팔랑팔랑 떨어지는 노란 나뭇잎들처럼 날아드는 퀸의 질문도 좋았답니다.



그리운 샘.
기분 좋게 세 식구가 아침 일찍 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과 등교를 하던 중이었어요. 추석 무렵 서울 이모야가 알리시아를 위해 미미 선물 세트와 제 책 등을 소포로 보냈는데 그게 한국으로 도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만만한 게 남편이라 아침부터 화풀이를 클레멘스에게 했네요. 클레멘스 탓도 아닌데 독일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요. 독일 우체국은 왜 그리 성의가 없는 거야? 알리시아가 얼마나 목이 빠지게 그 선물을 기다렸는지를 알기에 저절로 기운이 빠졌어요.


그날 아침에 클레멘스는 미팅이 있다고 시간이 남아 저랑 커피라도 마실 생각이었는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도 제 기분이 안 좋으니 혼자 카페로 갔죠. 집으로 가다가 아차 싶었어요. 그때였어요. 클레멘스의 톡. 시청 앞 카페라면서요. 집에 안 갔으면 오겠냐고요. 반갑고 고마웠어요. 월요일 아침 아닌가요. 그렇게 일주일을 시작하게 하면 너무 미안하잖아요. 한 달음에 달려가서 미안하고 고맙다고 사과부터 했어요. 타고난 성질을 뜯어고치긴 어려우니 사고 치면 제깍 사과부터! 최근에 새로 만든 제 모토랍니다. 아침에 버스 안에서 기운 없는 엄마 힘내라고 알리시아가 해 준 말도 생각나네요.

"그래도 이모야한테 돌아갔으니 잃어버린 것보단 낫잖아!"



퀸의 영화를 본 영화관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시간이 남아 오후의 산책을 했어요. 해가 나서 걷기가 좋았어요. 세 블럭 정도를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걸었죠.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하던지. 이어폰을 끼고 퀸의 노래도 들었어요. 팔랑팔랑 떨어지는 노란 나뭇잎들처럼 날아드는 퀸의 질문도 좋았답니다.


Does anybody know what we are looking for?
우리가 뭘 찾고 있는지 아는 사람 있나요?
Does anybody know what we are living for?
우리가 뭘 위해 사는지 아는 사람 있나요?


<The Show Must Go On by Queen>


아, 퀸은 정말 사랑하지 않기가 어렵네요. 저런 질문을 저리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다니요. 이렇게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가을날에요. 퀸이라는 그룹명에 꼭 어울리는 격조 높고 품격 있는 질문이에요. 멤버 중의 한 명인 브라이언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대요. 프레디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거나 화내지 않았다고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하고 평온했대요. 마지막 투병 중에도요. 그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짐 허튼의 말도 같은 맥락이었어요. 얼마나 많이 아프건 그건 자기 혼자만의 싸움이란 걸 알고 있었던 거죠.


샘.
아침에 아직도 기침으로 고생하신다는 샘의 말씀 듣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플 때 아프다고 말씀하셔도 좋다고요. 세상에는 참 멋진 사람들이 있죠.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고 얼굴을 볼 때마다 즐거운 사람들요. 퀸 같은. 프레디 같은. 샘도 제겐 그런 분이랍니다. 간만에 청명한 뮌헨의 가을 하늘을 보며 그 말씀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천천히 회복하셔도 그것은 그것 대로 좋겠지요. 조급해 하시지만 마시고요. 퀸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어요. 세상이 살 만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게 중요하죠. 한국의 늦가을이 너무 춥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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