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12월의 오페라 <헨델과 그레텔>

편지 21

by 뮌헨의 마리
올해는 <헨델과 그레텔>을 오페라로 감상했어요. 알리시아의 한 줄 평은 뭐였을까요? 엄마, 노래만 부르니까 너무 지루해! 애들은 얼마나 솔직한가요.


사진:<헨델과 그레텔> 카탈로그 참조


그리운 샘.


이틀 전에는 오전 내내 눈이 펑펑 쏟아지다가 개었다가 다시 내리기를 수 차례나 반복하더니, 어제는 자고 일어나니 온 세상이 하얗더군요.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기 힘들 만큼 변화무쌍한 풍경이었죠. 비가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처럼요. 이런 때 3미터 높이의 창문이 있는 카페에서 글쓰기를 한다는 건 축복 같아요. 12월의 독일은 학교 행사가 어찌나 많은지 저 같은 독일 생활 초보자에게는 따라가는 것조차 벅차네요. 매일이 어제 같고, 그제 같은 평온한 날들만 보내다가 어딜 가도 사람들로 북적여대니 정신도 없고요. 여기는 1년 치 명절 스트레스를 한 번에 받는 게 아닐까요?


이번 주만 해도 그래요. 월요일엔 학교에서 초등학년 단체 크리스마스 학예회가 열렸어요. 다행히 학년별로 준비한 건 아니고 다 같이 연극과 노래 등을 준비해서 발표하더군요. 알리시아는 동방박사 셋 중 하나를 맡아 연극에 참가했어요. 대사는 없었고요. 원래는 낙타 2인 중 1인이었는데 파트너보다 키가 너무 큰 바람에 동방박사로 바꿔주더라나요. 지난주에는 반 전체가 구청 신청사 Rathaus 내의 어린이들을 위해 개방된 룸에서 성탄 카드도 만들었고, 목요일엔 니콜라우스 데이. 다음 주엔 아침에 학교 성당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미사에도 참가해야 하고, 수요일 오후엔 크리스마스 기념 단체 영화를 보러 간대요.


그중 하이라이트는 이번 주 화요일 저녁이었어요. 해마다 연말이면 양할아버지께서 오페라 극장에서 호두까기 인형 등 발레를 보여주셨는데 올해는 밤에 움직이기 힘들다시며 할머니와 저와 바바라와 알리시아를 위해 표를 구해주셨거든요. 삼대에 걸친 일명 레이디스 나이트! 알리시아 학교와 빅투알리엔 마켓에서 가까운 작은 오페라 하우스의 이름은 뮌헨 시립 게르트너 플라츠 테아터 Staatstheater am Gärtnerplatz. 올해는 <헨델과 그레텔>을 오페라로 감상했어요. 알리시아의 한 줄 평은 뭐였을까요? 엄마, 노래만 부르니까 너무 지루해! 애들은 얼마나 솔직한가요. 엄마 왈, 그래도 휴식 시간 후 등장한 마녀는 괜찮았잖아!



단순한 줄거리인 헨델과 그레텔을 오페라로 지루하지 않게 만들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어린이 관객은 약 20프로 정도고 나머지는 죄다 어른들이었어요. 새로 레노베이션을 마쳤다는 오페라 하우스는 작지만 깔끔하고 우아했고, 천장 한가운데의 거대한 샹들리에가 휴게 시간에 천천히 내려왔다가 상영 전에 올라가는 것도 볼만 했어요. 할머니께서 오페라 감상 전에 궁금해하신 건 헨델 역이 여자인가 아닌가. 보통 헨델 역을 여자가 맡나 봐요. 아참, 그날 할머니가 머리에 쓰고 오신 회색빛 털모자엔 커다란 회색 방울이 달려 있었는데, 얼마나 귀여우신지 마치 눈의 여왕 같았어요. 나이가 드니 그런 멘트까지 허물없이 전할 수 있게 되네요.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저녁 7시 30분에 시작한 오페라는 휴게 시간을 포함해서 두 시간이 걸렸어요. 취침 시간을 훌쩍 넘긴 알리시아는 집에 오자마자 잠이 들었고요. 집 근처에 주차해 둔 할머니 차로 파파가 오며 가며 기사 노릇을 했지요. 할머니께서 귀갓길에 바바라를 집까지 데려다주시기로 했고요. 출발하시기 전에 저희에게 살짝 귀띔을 하시더군요. '내일 저녁 6시경 할아버지께 전화드려서 감사 인사 전하렴.' 다음날 알람을 맞춰놓고 저녁 6시에 전화를 드렸어요. 할아버지께서 직접 전화를 받으셨고, 무척 기뻐하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물으시더군요. '언제 또 오냐. 너희는 언제나 환영이란다. 다음에 오면 헨델과 그레텔 비엔나 공연 녹화한 것도 같이 보자꾸나.' 그 말씀이 그렇게 감사했어요.


샘.

서울에도 눈이 많이 왔나 봐요. 기온도 내려가고요. 뮌헨도 4월 중순까지 긴 겨울의 터널 속으로 들어갑니다. 회색과 잿빛 풍경 속에서도 어디서나 빛날 호박색 불빛이 위안이 될 거고요. 서울도 따스한 겨울 되길요. 사람의 불빛으로요.


공연 사진:카탈로그 참조/오페라 하우스 사진:구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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