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이의 첫김치 그리고 레몬물김치와 레몬석류청

편지 22

by 뮌헨의 마리


가장 맛있는 차는 역시 친구가 내려준 차였어요. 샘댁에 들를 때마다 샘이 직접 내려주시는 커피가 가장 맛있었던 것처럼요. 제가 그 커피를 얼마나 좋아했다고요.


그리운 샘.


두 주 전에 조카가 집에 들러 같이 점심을 먹었답니다. 가을부터 독일어 공부를 시작한 조카는 저녁에는 한국식당에서 알바를 하고 있어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로 바쁘답니다. 밤 10시가 넘어 마치니 피곤하기도 할 거고요. 그 와중에도 지난번엔 일하러 가기 전에 직접 담근 레몬석류청을 주고 가더군요.


생강청이나 레몬청은 들어봤어도 레몬에 석류까지 넣은 건 처음이라 궁금하기도 했어요. 레몬과 석류의 조화가 얼마나 예쁠지 기대도 되고요. 조카의 레몬석류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너무 아까워서 손님이 왔을 때 한번 내고 나머지는 아직도 병에 넣은 채로 아껴두었답니다. 김치를 담을 때 넣어도 깊은 맛이 난다는 얘기도 들은 적 있어 다음 김치에 넣어보려고요.


조카의 마음이 고마워 무김치와 배추김치를 담아 조금씩 나눴어요. 양념장을 다 쓴 후에도 남아 있는 절인 배추는 레몬, 오이, 당근, 양파, 파 등을 넣고 피클이라 불러도 무방할 물김치를 담아봤고요. 마늘은 통째로 넣어 향만 냈답니다. 익은 물김치를 건져서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벼먹으니 훌륭한 점심 한 끼가 되더군요. 이런 소박한 한 끼를 먹을 때 몸도 마음도 충만해집니다. 샘도 그러시죠?



지난 주에는 베트남 친구 투이집에 가서 김치를 담아주고 왔어요. 투이도 남편도 두 사람 다 김치를 좋아하다고 해요. 투이가 먼저 연락이 와서 이러더군요. 배추를 한 통 사놨는데 김치 담는 법을 알려달라고요. 아무리 바빠도 이런 건 바로 달려가야죠. 투이와 함께 한국 슈퍼에 가서 고추가루와 까나리 액젓과 찹쌀가루까지 사와서 그녀의 부엌에서 투이를 위한 첫김치 강습을 열었어요.


외국인이 첫김치를 담글 때 가장 쉬운 법을 고민하다가 우리식 겉절이를 생각했죠. 배추를 잘라 소금에 절여놓고 양념 준비를 했어요. 낯선 요리일수록 옆에서 자꾸 보는 게 중요하죠. 투이에게 말했어요. 자꾸 봐야 해. 내가 가장 쉬운 방법을 알려줄테니 몇 번이고 계속 보다가 따라해 봐. 그날 배추는 많이 절이지 않아 심심했고, 양념도 세지 않아 겉절이로 먹기가 좋았어요.


투이에게는 전날 안남미쌀로 밥만 해놓고 밥이랑 김치랑 먹자고 일러두었어요. 제가 이 쌀을 좋아하잖아요. 투이는 아이들용으로 라쟈나 소스를 직접 준비해놓고 있더군요. 밥을 먹기 전에 차도 마셨는데 차거름망이 없는지 커피 거름종이에 차를 내려주는 걸 보고는 최고야! 하며 엄지를 세워 칭찬해 줬답니다. 저런 센스를 저는 좋아해요. 집으로 오며 투이가 알려준 곳에 가서 똑같은 차를 사와서 집에서 마셨는데 같은 맛이 나지는 않았어요. 가장 맛있는 차는 역시 친구가 내려준 차였어요.


샘.

샘댁에 들를 때마다 샘이 직접 내려주시는 커피가 가장 맛있었던 것처럼요. 제가 그 커피를 얼마나 좋아했다고요. 커피를 내리기 전에 작은 초콜릿색 글라인더에 커피콩을 가는 건 언제나 제 일이었죠. 뻑뻑한 그라인더 손잡이를 돌리자마자 풍겨오던 진한 커피향. 그 순간그 시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날들을 떠올릴 때마다 뜨거운 커모금을 마신 듯 가슴 속이 따끈해지지요. 어떤 커피도 그 맛을 흉내내진 못할 거예요. 오늘 같은 날은 친구가 보내준 커피가 생각나네요. 간만에 한 잔 마셔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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