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반드시 만납니다.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그리운 샘.
며칠 전이었어요. 새해 들어 오랜만에 하늘이 맑게 갠 날이었죠. 아침에 카페에 앉아 있는데 푸른 허공 속에 하얀 길이 몇 갈래로 나더니 점심 때도 오후에도 석양이 질 때까지 종일 고개만 들면 하늘길을 만났답니다. 저런 길도 있었구나! 하늘에 길을 내다니. 그것도 깃털처럼 새하얀 길을.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길은 반드시 만나잖아요.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어제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샘 안부를 전해 들었답니다. 아프시다고 들었는데 얼굴은 좋으셨어. 제가 계속 샘 아프시다 걱정한다고 위로차 꾸민 말은 아닐 거예요. 곧 자카르타 가신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고요. 그래서 생기가 넘치시는지도 몰라. 우리 샘은 바쁘셔야 하는 분. 둘이 소리 내어 웃었어요. 자카르타 가시는 일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보세요!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새해엔 훌훌 털고 일어나실 거라고요.
샘.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예전보다 생각이 단순해지고 명징해졌어요. 갱년기가 준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제는 정오 넘어 카페를 나서는데 날이 어찌나 좋은지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어요. 유리처럼 맑은 공기. 티끌 없이 푸른 하늘. 한국에 절반쯤 뚝 떼어 하늘길로 날려보내고 싶은 날씨 말이에요. 거대한 통유리 자동문이 스스르 열리자 얼굴에 양 손에 제 가슴에 와락 안기던 1월의 싸늘함까지도 좋았어요. 겨울은 바로 그런 맛이죠.
백팩에 든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물 때의 만족감도 빼놓을 수 없네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카페 출근이잖아요. 저 역시 꿈꾸던 일인데 글 하나 완성하지 못하면 미안하죠. 거기다 햇살까지 한 줌 비춰주면 화룡정점이라고 할까요. 카페에서 알리시아 학교 앞까지는 직진해서 백 걸음도 걸리지 않아요. 아껴가며 걸었어요. 신호등 앞에 서자 천금 같은 햇살이 온 몸을 감싸지 뭐예요. 저절로 눈이 감기더군요. 고개는 위로 향하고요.
오, 고트! Oh, Gott! 감탄사가 나왔어요. 페소아가 그랬지요.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우리는 신의 노예다'. 그리고 서둘러 이렇게 덧붙였고요. '신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이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가장 완벽하고 가장 충만한 순간에 저도 모르게 찾는 이가 신이라니요. 그 대상이 신이든 누구였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그 순간만은 아무 것도 바랄 게 없었어요.
요즘 매일 페소아를 읽습니다. 샘과 공유하고픈 대목이 나오면 표시를 해놓지요. 오늘은 브런치 글 200편 째를 샘께 드리는 편지로 마무리합니다. 아무 글이라도 좋으니 무조건 써보라고, 이제는 브런치에 글을 시작할 때라고 샘과 J언니가 차례로 등을 떠밀어 주지 않았더라면 이 글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두 분께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하늘길까지 열려 있으니 한국과 더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좋은 소식 기대할게요.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 여인숙에 머물며 기다려야만 하니 감옥으로 여길 수도 있겠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사교장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참을성 없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숙을 감옥으로 여기는 건 잠들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방안에 누워 있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사교장으로 여기는 건 음악 소리와 말소리가 편안하게 들려오는 저쪽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 넘긴다. 나는 문가에 앉아 바깥 풍경의 색채와 소리로 눈과 귀를 적시며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만든 유랑의 노래를 천천히 부른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밤이 오고 마차가 도착하리라. 나에게 주어진 산들바람을 즐기고, 그렇게 즐길 수 있도록 주어진 내 영혼을 즐길 뿐 더 이상 묻지도 찾지도 않는다. 내가 여행객들의 책에 적은 글을 언젠가 다른 이들이 읽고 나처럼 경치를 감상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만약 아무도 읽지 않거나 읽었거나 누구 하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해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