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츠비는 뭐가 훌륭한가

편지 26

by 뮌헨의 마리


'개츠비는 왜 훌륭해? 뭐가 훌륭해?' 엄마 체면도 살리고 아이가 엄마를 다시 보게 만들 위대한 답은 하지 못했답니다. 그러게, 대체 뭐가 훌륭하지?


그리운 샘.


알리시아와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어요. 초등학생을 위한 세계명작 축약본으로요. 무슨 생각으로 올해 우리 나이로 열 살이 된 딸에게 이 책을 읽어 줄 마음이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2주째 읽다 보니 개츠비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장례에 한 명이라도 더 오게 하려고 개츠비의 유일한 친구 닉이 사방팔방으로 노력하는 사이에 빗방울이 떨어지듯 알리시아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하네요.


"개츠비는 왜 훌륭해? 뭐가 훌륭해?개츠비가 죽었는데 왜 이야기는 안 끝나?"


이런 질문들.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어설픈 감상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게 만드는 아이의 질문 앞에 매순간 기쁜 마음으로 쩔쩔 매지요. 엄마 체면도 살고 아이가 엄마를 다시 보게 만들 위대한 답은 하지 못했답니다. 그러게, 대체 뭐가 훌륭할까.



샘.

작년 초봄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샘께 편지를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독일로 오기 전에 개츠비 강의를 듣고 이런 생각을 했죠. 이젠 떠나도 되겠어! 제게 개츠비는 만 3년 고전 문학 듣기의 총 결산이었어요. 독일에 와서 뒤늦게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꼈답니다. 개츠비를 탄생시킨 피츠제랄드마저 위대해 보였죠. 그 문장들. 장면들. 세련되고 우아하고 격조 있고 멋졌어요. 특히 이런 장면들요.


나무 아래에서는 개츠비의 엄청난 집 말고는 볼 게 없어서 나는 교회 종탑을 바라보는 칸트처럼 삼십 분도 넘게 그것을 응시하였다. (..) 이제는 나도 돌아갈 시간이었다. (..) 나는 부엌에서 스토브를 밀어 넘어뜨리지만 않았다 뿐,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소음을 낸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소리를 들은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소파의 양끝에 앉아서 마치 어떤 질문이 하나 던져졌거나, 아니면 던져진 질문이 아직 상대방에게 도달하지 않고 허공에 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츠비가 그 집에서 제일 소박하다는 그의 침실에서 두 개의 엄청난 에나벨 장롱을 열어 보이는 장면도요. 산더미 같은 양복과 실내복, 넥타이가 걸려 있었고, 셔츠가 한 다스씩 마치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던 장롱들. 개츠비가 하나하나 펼쳐 보여주는 셔츠들. 문장이 새겨진 줄무늬 셔츠, 산홋빛의 체크무늬 셔츠, 사과빛 푸른 셔츠, 인디언 블루의 이니셜이 새겨진 라벤더빛 혹은 연한 오렌지빛의 셔츠들. 데이지의 눈물이 이해가 됩니다. 저는 글만 읽어도 울고 싶던 걸요. 너무 아름다워서요.



그날 밤을 닉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자기는 사라져주려고 했지만 그들은 자신을 놓아주지 않았다고요. 아마 자기가 거기 있는 게 그들의 기쁨을 더 고양시키는 것 같았다고 능청을 떨면서요.


음악실에 들어가자 그는 피아노 옆의 외등을 켰다. 떨리는 손으로 데이지에게 담뱃불을 붙여주고는 마루 위로 반사되는 희미한 빛 말고는 어떤 빛도 없는 방 저편의 어둠 속에 그녀와 함께 앉아 있었다.(..)


아침에

그리고 저녁에

얼마나 즐거운가.


바깥의 바람은 더 거세지고 있었고, 멀리 해협에는 번개가 치고 있었다. 웨스트에그의 불빛이 모두 들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을 실은 전철이 빗줄기를 뚫고 뉴욕을 떠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 인간이 마음 속 깊이 변화하고 대기가 흥분을 자아내는 그런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순간이 개츠비의 오랜 기다림을 보상해 주었을 거예요. 비록 자신의 환상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이었는지 한 순간에 깨달았다 할 지라도요. 개츠비처럼 살기 힘든 현실. 그런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그가 살던 웨스트에그라면, 이루지 못할 꿈을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들던 개츠비와 그런 개츠비를 이해하는 단 한 사람 닉. 그들의 마음. 그것이 개츠비가 평생 가닿으려 하나 닿을 수 없었던 이스트에그의 푸른 불빛이 궁극으로 도달하는 곳이 아닐까요.


개츠비가 왜 훌륭한지, 그의 영혼이 왜 위대한 지는 알리시아에게 숙제로 남겨둘까 해요. 강렬한 태양 아래 춥고 바람 찬 쿠웨이트에서 무사히 돌아오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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