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소, 당신을 생각하며, 사랑하오.

편지 27

by 뮌헨의 마리


가슴속에 담아 둔 말들을 위해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선택한 것은 다음과 같은 세 마디였어요. '나는 잘 있소, 당신을 생각하며, 사랑하오.'



그리운 샘.


알리시아에게 어린이용 <페스트>(지경사)를 읽어주다가 전개와 결말이 하도 궁금해서 며칠 전에는 알리시아가 잠든 틈에 끝까지 읽어버렸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날아온 카뮈의 <페스트> 원본을 받았죠. 알리시아는 엄마가 읽고 있는 똑같은 제목의 책이 어마어마한 분량임을 알고 깜짝 놀란 모양이에요. 걱정 마. 엄마도 옛날엔 400페이지나 되는 책은 쳐다도 안 봤어! 아, 물론 이런 말은 속으로만 삼키고 우아한 척 미소만 지었답니다.


제가 <페스트>에서 재미있게 생각한 것은 추상성에 대한 논의였어요. 외부에서 온 신문기자 랑베르가 폐쇄된 도시 오랑을 탈출하기 위해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증명서를 써 달라는 부탁을 의사 리유는 들어주지 않지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이 리유의 생각이고, 그의 확인서는 어차피 랑베르의 탈출에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자 랑베르는 이렇게 항변합니다. 제가 그의 말에 미소 짓게 되는 건 그의 사고가 지극히 프랑스적이란 생각 때문이에요. 아니면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한번 들어보세요.


"저는 기사를 쓰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어떤 여자하고 살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그쪽이 더 어울리는 얘기가 아닙니까? // 선생님은 이해하지 못하세요. 선생님 말씀은 이성에서 나오는 말씀이지요. 선생님은 추상적이십니다. // 선생님은 마이동풍이시군요. 남의 일은 생각해 본 적도 없으시군요. 생이별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도 않으셨어요." (<페스트> 알베르 카뮈, 민음사)



어떤 여자와 살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는 말. 그 말이 봄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처럼, 손등 위로 내려앉는 햇살 같이 구체적으로 와 닿는 2월이에요. 불멸의 사랑이나 위대한 혁명을 위해 태어났다는 말에 전혀 밀리지 않잖아요. 귀엽고 또 솔직하고요. 말 그대로 추상적이지도 않지요. 그런데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 중 추상 아닌 게 있나요. 사랑, 우정, 행복, 꿈, 희망, 성공, 부, 진리, 그리고 마음의 평화까지도요. 이런 모순 덩어리 생이라니요!


그 신문기자의 행복에 대한 조바심에도 일리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유에 대한 그의 비난은 정당했던가. 페스트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일주일에 사망 환자 수가 평균 오백 명에 달하고 있는 병원에서 보낸 날들이 정말로 추상적이었을까. 그건 다만 시작일 뿐이었고요. 랑베르의 말에 리유가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자기야말로 페스트라는 추상이 아닌 환자들의 구체성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이 책의 서두에 리유는 벌써 노동에 대해 이렇게 서술합니다. 중년 이후 제 삶에서 실현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고요. 이 책을 손에 든 의의이자 완독해야 할 이유겠지요.


저 매일매일의 노동, 바로 거기에 확신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그 나머지는 무의미한 실오라기와 동작에 얽매여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멎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일이었다. (<페스트> 알베르 카뮈, 민음사)



사람은 제각기 자신의 마음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 사람은 리유의 친구 타루입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죠.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고 성자가 되기를 바라던 그 역시 페스트를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영웅이나 성자보다 다만 인간이 되겠다고 한 리유는 살아 남아 기록합니다. 친구와 아내를 동시에 잃은 후 리유는 인간이 페스트나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과 추억뿐이라 믿기 때문이지요.


'나는 잘 있소. 당신을 생각하며. 사랑하오.' (<페스트> 알베르 카뮈, 민음사)


도시가 폐쇄되고 난 후 도시의 안과 밖에서 생이별한 사람들이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전보였을 때를 상상해 보세요. 전보라는 속성상 많은 말을 전할 수는 없었겠죠. 가슴속에 담아 둔 말들을 위해 그들이 최선을 다해 선택한 것은 저 세 마디였대요.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에 더 덧붙일 말이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샘.

새로 시작하실 일 축하드려요. 어제 올린 책에서도 나왔듯 일이 있다는 건 축복 같아요. 예전보다 기력은 당연히 떨어지시겠죠. 그럼에도 일이란 없던 기운도 추스르게 하고, 어떻게든 자리를 털고 일어나게 하는 힘이 있지요. 그렇게 믿고 싶네요. 제가 정해놓은 글쓰기 마감처럼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거든요. 고마운 글쓰기! 저를 성실한 인간으로 개조해 주는. 그 일의 시작이 딱 봄이라는 것도 맘에 들고요. 오늘 아침 빅투알리엔 마켓 버스 정류장에서 찍은 봄꽃들을 동봉합니다. 봄기운 팍팍 받으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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