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를 모른다고 했다

편지 28

by 뮌헨의 마리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삶이 훨씬 역동적이 될 수 있다는 걸 독일에 와서 배웁니다. 하나를 놓자 다른 선택이 여러 개 온다는 것도요.



그리운 샘.


춘삼월이네요. 꽃들은 앞다투어 피고 지고 있나요? 뮌헨의 날씨는 이렇습니다. 2월까지 이례적으로 좋던 날씨가 3월이 되자 갑자기 요동을 치고 있어요. 꽃샘추위로 이해하려 합니다. 봄이 쉽게 오나요. 너무 쉽게 얻으면 소중한 줄을 모르지요. 제가 정리한 꽃샘추위의 정의입니다. 이번 주엔 월요일부터 눈이 펑펑 쏟아지더니 화요일엔 해가 쨍쨍 났고요. 주간 날씨를 보니 이번 주와 다음 주 사이에도 눈비가 오락가락하네요.


오늘 아침엔 오랜만에 카페 이탈리에 정시 출근을 했답니다. 알리시아는 7시에 혼자 학교에 갔고요. 요 며칠간 제일 먼저 학교에 가는 맛을 들였는지 깨우지 않아도 혼자 일어나는 게 신통방통하기만 합니다. 카페 이탈리에는 10분 전에 도착했어요. 아침 담당자가 바뀌었는지 새 얼굴이 출입문 안쪽에 버티고 서서 8시까지 문을 안 열어 주더군요. 저 역시 부슬비 아래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지요. 정확함이란 나쁘지 않잖아요.

카페에는 카니발 방학을 포함 겨우 열흘 만에 왔을 뿐인데 왠지 새로운 기분이 들었어요. 1년째 출근하는 카페인데도 말이에요. 3월과 함께 시작한 알바 덕분에 제 일상에도 변화가 왔기 때문이겠죠. 아, 변화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요. 지난해 내내 한국이 그립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저는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못 할 이유가 없지요. 낯선 곳도 아니고요. 애써 정을 주지 않던 독일어에도 애정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어요.



오늘 저는 닥터 지바고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같이 일하는 곳에 20대 중반과 30대 중반의 젊은 친구 둘이 있는데 글쎄 닥터 지바고를 모르지 뭐예요. 그 가게에는 점심때 간단한 음식도 팔고 있어 머리 두건을 써볼까 생각했거든요. 두건, 하면 제겐 언제나 스카프를 쓴 닥터 지바고의 라라가 먼저 떠오르지요. 여기엔 알렉스 카츠의 그림도 한몫했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심하게 웃지 뭐예요. 닥터 지바고를 모른다나요. 구시대 영화라는 멘트까지 달고서요.


오 이런, 그날은 닥터 지바고에겐 굴욕의 날이었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저는 구세대라는 걸요. 별로 애달프지는 않았어요. 사실이 그런 걸요. 퀸 역시 구세대라 그들의 영화에 관심이 가지 않거나 보면서도 심드렁할 세대들이 왜 없겠어요. 다만 문학과 예술의 나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답니다. 문학이나 예술은 언제 나이를 먹는가.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나이가 들지는 않을 거예요. 알아주는 사람이 많든 적든 영원한 청춘으로 남는 것. 그게 문학이고 예술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 덜해졌어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았답니다. 어제 알리시아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반 친구들과 각자 엄마들 나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나이가 제일 많다는 거예요. 그걸 몰랐나. 당연한 걸 가지고 트집을 잡네요. 일단 미안하다, 사과부터 했죠. 그리고 네가 이해해라, 위로했고요. 제 글은 알리시아에게 줄 수 있는 걸 남기는 것. 이 순간들. 매일매일의 일상들. 아무렇지도 않은 시간들. 아이가 까맣게 잊어버릴 날들의 기록이자 기억에 대한 기록이 될 거예요. 그 글 속에서 저는 더 나이가 들지 않은 채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겠죠.



샘.

미세 먼지로 고통받는 한국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네요. 3년 전 샘과 한강을, 여의도를 무한 산책할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견딜만했었는데요. 시간이 날 때, 옆에 있을 때 자주 만나는 것이 정답이라는 걸 제가 그때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리움의 총량은 그대로지만, 회한과 후회는 줄여주니까요. 샘의 새로운 날들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타이틀이 하나 더 주어졌다고 일상에 천지개벽이 일어날 리는 없겠지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변화란 마음속에 이는 물결 같은 게 아닐까요. 열망이, 열정이 바람처럼 일 때 변화도 함께 오지요. 그 바람이 내부에서 부느냐, 외부에서 오느냐가 다를 뿐이고요.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삶이 훨씬 역동적이 될 수 있다는 걸 독일에 와서 배웁니다. 하나를 놓자 다른 선택이 여러 개 온다는 것도요. 크고 작은 변화의 순간들을 팔 벌려 기꺼이 안을 때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겠지요. 작은 일에도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어제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자정쯤 깨어나 샘 생각을 했어요. 잠은 잘 주무시는지. 식사는 잘 챙겨 드시는지. 기력은 좀 나시는지. 이 글을 쓰는 동안 뮌헨에는 다시 해가 났어요. 하루에도 변화무쌍한 독일의 날씨마저 사랑하게 됩니다. 늘 희망을 주니까요. 같은 이유로 잿빛 하늘이 우리 삶에 어둠을 드리우더라도 절망하지 않기. 건강하시고요, 샘. 푸른 하늘 몇 장 올립니다. 미세 먼지로 피곤하실 눈 좀 씻으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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