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게 그래요.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감정이란 게 있지요.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좌절과 무기력과 허탈감 같은 것 말이에요. 기억하는 한 사랑은 아직도 끝난 게 아니었어요.
그리운 샘.
다시 줄리언 반스를 읽었어요. 또 반스라니! 지겨우시다고요? 들어보세요. 우리도 언젠가는 겪을지도 모를 일이랍니다. 샘도 읽으셨으리라 생각하는 이 책의 제목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Levels of Life>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30년을 함께 한 배우자이자 문학의 동반자였던 팻 캐바나 Pat Kavanagh를 잃은 후 그녀에게 바치는 반스의 애도사입니다. 팻이 떠나고 없는 시간들을, 기억들을, 빈자리를 그가 어떻게 견뎠는지, 무엇으로 채웠는지 담담하게 보여 주는 책이지요. 실제의 그는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전혀 담담하지 않았지만요.
공감이 가는 대목은 이랬어요. 팻이 곁에 있을 때 그가 썼던 소설 속에서 사별한 남자는 멋지게 애도의 기간을 보냈던 모양이에요. 반스 역시 언젠가 아내가 떠나면 신발끈을 조이고 도보 여행을 할 계획을 세웠고 그 여정을 글로 써보려고도 했답니다. 사람이란 게 그래요.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게 있지요. 고통과 좌절, 무기력과 자기 비하, 열등감과 모멸감 같은 것들요. 겪지 않았기에 글로 쓸 수 있었다면 반대도 가능하겠고요. 이런 게 인생의 아이러니 아닐까요. 그러니까 소설이고요.
실제의 그는 어땠을까요. 아내에 대해 언급하기를 거부하는 친구들에게 분노하고, 그리하여 30년 우정을 포기하고, 여행을, 심지어 새로운 연애를 권하는 이에게는 격분하죠. 도보여행이 뭔가요. 신발끈을 조일 힘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옷을 걸칠 기력도, 집 밖을 나설 의욕까지 상실했고요. 아내가 있어야 할 자리, 소파의 옆자리, 침대의 빈자리를 견디지 못했어요. 그녀의 목소리, 그녀와 나누던 대화, 사랑을 속삭이던 말들. 홀로 존재하는 매 순간이 고통이었을 그가 자살의 유혹은 어떻게 이겨냈을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깨달은 진실은 그가 기억하는 한 그녀는 살아있다는 것.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은 그녀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는 사실. 기억하는 자에게 사랑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어요. 너무 상투적인가요? 저는 반스에게 동의합니다. 책을 덮자 생각이 많아지고 복잡해지더군요. 반성문으로 이 글을 마치려는 건 아니에요. 저로 말하자면 준 것보다 받은 게 너무 많아서에요. 다 갚지 못한 사랑은 결국 이 생이 끝나더라도, 그 후로도 오랫동안 빚으로 남게 될 테니까요. 사랑만큼 정확한 계산법이 어디 있나요. 주지도 않고 혹은 준 것보다 많이 받을 생각은 말아야겠지요. 원하든 원치 않든 문학은 우리를 자정 시키고 개안시킵니다. 애도에 성공한 후 그는 이렇게 탄식하며 글을 맺었답니다.
애도에 '성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공은 기억하는 데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잊어버리는 데 있는 것인가?
그래요. 사랑이 그렇게 쉽게 끝날 리가 있나요.
샘.
얼마 전에 클레멘스가 자다가 한밤에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답니다. 반 시간 간격으로 두 번이나 토했고요. 저녁으로 먹은 것이 많지도 않았으니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아닐까요.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했어요. 헛구역질을 하는 그의 등을 쓸어주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답니다.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 다행히 숙면을 취한 덕에 이튿날 안색은 평소대로 돌아왔답니다. 출근하는 그의 등을 돌려세워 두 마디를 건넸더니 짓궂은 한 마디가 보태져서 돌아오네요.
"죽지 마, 제발."
"누구나 죽어. 언젠가는."
말은 맞고요. 아침부터 등을 한 대 탁 쳐서 일터로 보냈어요. 간밤에 저를 놀라게 한 대가로요. 4층 계단을 내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든 생각은 이렇게 아웅다웅 살다가 언젠가 떠날 거라는 예감. 그것 말고는 뾰족한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 이 예감이 틀리지 않을까 봐 안심도 되고 두렵기도 합니다. 글쓰기는 후자를 만회하려는 노력이고요. 그의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는 동안 샘이 느끼셨다는 '공포'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 속에 둥지를 치고 살아가는 불안과 공포가 때로 삶의 동력이 되리라는 기대만이 유일한 위로겠지요. 과도하면 당연히 위험하겠고요.
샘.
아침에 톡이 왔네요. 가게 전기 점검으로 알바를 쉬어도 좋다고요. 알바 시작한 지 꼭 한 달째. 월차를 받은 기분이에요. 부엌에서 알리시아의 빨간 라디오를 켜고 Bayern Plus를 듣습니다. 옥토버 페스트에서 자주 듣는 단순한 리듬이 반복되는 바이에른 컨트리송을 뉴스와 함께 보내주네요. 알리시아가 즐겨 듣는 프로랍니다. 뮌헨에는 다시 해가 뜨고, 또 하루의 출발점에 저는 서 있습니다. 반환점을 돌아 이 자리에 돌아오면 하루가 저물겠지요. 샘의 하루가 평화로운 저녁이기를. 제가 가닿을 저녁 역시 그러하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