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고귀한 것

편지 30

by 뮌헨의 마리


작년 봄을 기억해요. 시간은 멈춘 듯했고, 슬픔 역시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단단하게 버티고 있을 것만 같았지요.


우리 동네 지하철인 우반역 콜룸부스 플라츠 풍경


그리운 샘.


작년 봄을 기억해요. 그때 샘은 조카들과 조카 손녀딸의 크고 작은 슬픔들 때문에 몹시도 힘들어하셨죠. 시간은 멈춘 듯했고, 슬픔 또한 그 자리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언제까지나 버틸 것 같아 가슴을 졸였답니다. 그 무렵 저는 뮌헨으로 와서 알리시아에게 두꺼운 <나니아 연대기>를 읽어주며 낯선 시간과 공간을 견디는 중이었어요. 샘이 주신 책이었죠. 처음부터 그랬듯 마지막까지 나니아가 제게 안겨준 가장 큰 선물은 '슬픔은 고귀하고 숭고한 것'이란 말이었어요. 언어가 주는 울림에 제 가슴은 얼마나 뛰던지요.


지난 1년간 샘과 제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도 해요. 지난해 봄꽃들 사이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던 슬픔은 어디론가 꽃잎처럼 흩어졌겠지요. 지금쯤 샘은 새로운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시거나 피곤하시겠고요. 생각하면 할수록 다행이에요. 피로는 자고 나면 덜어지기라도 하지만 슬픔은 고통과 우울을 동반한 채 잠으로도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꿈속까지 쫓아와 몸과 마음에 바위 덩이를 던져놓고 가기도 하잖아요.


오늘 아침에는 오랜만에 카페 이탈리에 왔어요. 늘 먹던 카푸치노와 크림이 듬뿍 든 크라상을 주문하고 샘께 편지를 쓰다가 출근하리라 생각했지요. 오늘 아침엔 <어린 왕자>도 독일어로 읽기 시작했어요. 샘께 편지를 써야 하는데 어린 왕자가 자꾸 옷소매를 당기는 바람에 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리더군요. 그러고 보니 린다와 함께 읽는 <이방인>도 <어린 왕자>도 둘 다 프랑스 작품이네요. 뮌헨의 이태리 카페에서 독일어로 읽는 프랑스 문학은 생각보다 달콤했답니다.


우리 동네 우반역 앞 약국 아포테케와 빵집(왼쪽) 우반역 부근 건물과 가로수 꽃들(오른쪽)


샘.

뮌헨은 이번 주 월요일부터 계속 날씨가 흐렸어요. 한 주 내내 해 소식이 없어서 월요일부터 기분이 우울했고요. 오늘은 같이 일하는 어린 친구가 자기도 기분이 처진다고 하길래 날씨 탓이라며 서로 위로를 주고받았답니다. 그래도 동네마다 길목마다 봄꽃들은 부지런히 피고 집니다. 이상하게 뮌헨에는 핑크빛은 드물고 흰 꽃들 천지네요. 지난주에 알리시아와 <어린 왕자>를 읽다가 발견한 구절과 함께 뮌헨의 봄 소식 몇 장 올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무뎌지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당신도 언젠가 슬픔이 지나가면 나를 알게 된 것이 기쁨이 되겠지요. 당신은 언제나 내 친구로 남을 것이고, 나와 함께 웃고 싶어질 거예요.


밤마다 별을 바라보세요. 당신이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볼 때 그 별 중 하나에 내가 살고 있을 테니까요.(...)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요. 집이나 별, 그리고 사막을 아름답게 빛내는 건 눈에 보이지 않듯이 말이에요.


알바 일은 단순 노동이라 얘깃거리가 많지는 않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도 적고요. 오전에 미리 준비한 음식을 런치 타임 두 시간 동안 손님들에게 제공하거나 식기를 닦거나 정리하는 일을 하지요. 고객들은 대부분 독일 사람이에요. 매일 메뉴가 달라서 집에서도 만들어 보려고 해요. 요즘은 일 때문에 요가는 그만두었고, 운동 삼아 왕복 1시간 정도를 걸어서 출퇴근 해요. 스마트폰으로 걷는 양도 확인해가면서요. 하는 일은 같아도 매일 새 마음으로 출근하려고 노력한답니다. 샘의 봄도 나날이 새로우시길요. 많이 쉬시고요. 샘과 걷던 봄날 여의도 벚꽃길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답니다.


독일에도 가장 먼저 피는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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