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께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답례를 해야 한다. 그 세대의 습관을 따라서. 이때 답례란 감사 엽서다.
어젯밤 아이가 말했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오늘 하루 너무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해 죽겠다고 말이다. 사실이었다. 아이는 1주일 방학이 다 날아갔다고 엄살을 부리면서 자기에게 1주일 방학을 더 주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것도 일리가 있었다. 아이는 토요일 오후 5시에 나흘 간의 스키 강습을 완전히 끝냈다.
마지막 날은 오전만 강습이 있고 오후에는 그룹별로 스키 시합이 있었다. 아이는 자기 그룹에서 1등을 했다. 그런데 스키 강사가 그랬단다. 우리 아이가 1등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원래 있던 그룹에서 1단계 강등되는 바람에 새로 간 그룹의 아이들이 우리 애보다 두세 살 어렸던 모양이다. 강사 말이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1등을 했다나. 아이도 그 말이 납득이 되는지 쿨하게 인정했다.
일요일 오전 아이에게는 미션이 있었다. 독일 친할머니와 새할머니 그리고 이태리 이모부의 외숙모님이신 탄테 헬가에게 엽서 쓰기. 각각 이유가 있었는데, 독일 친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방문했던 지난 주말에 할아버지로부터 라디오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다이닝룸에 있던 빨간 라디오는 아이가 전부터 갖고 싶어 하던 물건이었다. 할아버지는 쓰시지 않는 라디오였는데 한번 주시겠다는 걸 사양한 후 엄청 후회하는 눈치였다.
할아버지께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답례를 해야 한다. 그 세대의 습관을 따라서. 이때 답례란 감사 엽서다. 아이는 열심히 엽서를 쓰고 빨간 라디오까지 그렸다. 한편 새할머니는 한 달째 크루즈와 비행기로 남미를 여행 중이신데 다음 주에 돌아오신다. 페루의 마추픽추와 파타고니아까지 포함한 긴 여정이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쁘다는 엽서 한 장 정도는 미리 도착해 있어야 반가우시겠지?
탄테 헬가는 못 뵌 지 오래되었다. 자주 집을 비우시고 오스트리아에 있는 작은 별장에서 지내시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도 돌아오시는 일정에 맞추어 연락을 드렸더니 위층에서 레노베이션을 하는지 소음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시며 다시 떠나셨다. 일흔 중반을 넘기셨는데도 자가운전을 하셔서 가능한 일이다. 참 다행한 일이다. 탄테 헬가에게는 새가 있는 엽서를 골랐다. 지난 크리스마 때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하는 새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고.
그 외에도 아이에겐 한 가지 더 미션이 있었는데 바로 월요일 종교 시험 준비였다. 이 시험은 아이도 나도 정확한 날짜를 몰랐는데 율리아나 엄마가 알려주었다. 우리 아이가 종교 점수가 바닥이었다는 걸 기억한 모앙이었다. 첫날 스키를 마치고 돌아와 노트를 같이 읽어보았고, 일요일엔 혼자서 따로 노트 정리를 하며 자가 학습의 기틀을 보여 주어 나와 파파를 놀라게 했다. 이 정도면 시험 점수를 얼마를 받는가 와는 무관하게 무한 칭찬을 받고도 남겠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일요일에도 출근했던 파파와 오후 5시에 수영장까지 다녀왔다. 피곤하면 안 가도 된다고 했더니 아니란다. 꼭 가야 한단다. 언제부터 저렇게 물을 좋아했지? 어제는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다이빙까지 했다나. 1m 다이빙대에서 무려 일곱 번이나 잠수하는 기염을 토했다고.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집에 와서 말했다. 자기가 오늘 너무 많은 일을 한 것 같다고. 내가 봐도 그랬다. 침대에 가서는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듣다가 잠이 들 때까지 만 아홉 살에게는 참으로 중차대한 일요일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