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와 플로베르의 앵무새

편지 32

by 뮌헨의 마리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소망하는 일은 소박하더라고요. 부헨벡 7번지로 돌아가 아침을 먹는 것, 정원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는 일처럼요.



그리운 샘.


오늘 아침에는 매일 슈탄베르크로 출퇴근하던 관성 때문에 알리시아와 함께 집을 나섰어요. 어제도 오늘도 비는 계속 내리고 저희 집은 추워서 어제도 매트를 켜고 잤답니다. 오늘은 간만에 카페 이탈리로 출근을 했어요. 그사이 창밖 풍경도 바뀌고 바리스타들도 바뀌었더군요. 나쁘지 않았어요. 익숙한 것들도 처음엔 새로움으로 시작하니까요. 슈탄베르크를 오가며 줄리언 반스의 책을 읽었어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과 삶을 다룬 <시대의 소음>과 플로베르를 다룬 <플로베르의 앵무새> 두 권이에요.

쇼스타코비치와 관련해서는 작년 사월에 샘께 편지를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마리엔 플라츠에서 야외 공연을 보았던 날이죠. 그날은 사월의 늦은 오후였어요. 주말이라 알리시아는 파파와 놀이기구가 많은 온천 수영장으로 갔고요. 저는 혼자 마리엔 플라츠 쇼핑 거리 반대편인 카를 광장의 후겐두벨 서점 북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상큼한 민트 티를 마셨죠. 야외 정원으로 향하는 열린 문으로 봄볕과 봄바람이 불어 들어와 오렌지빛 커튼이 부드럽게 흔들리던 것도 기억해요.


알리시아와 클레멘스와 만나기로 한 마리엔 광장까지 걸어가는데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하나도 춥지 않은 바람, 온몸을 감미롭게 휘감고 지나는 바람. 그 바람 속에 쇼스타코비치가 들어 있었어요. 광장 전체에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죠. 작은 야외 오케스트라였어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플루트와 피아노까지. 순간 시간이 멈추고, 광장을 가득 채운 인파도 사라지고, 제 자신도 잊었어요. 오직 바람만이, 음악만이, 광장의 이쪽에서 저쪽까지를 바쁘게 오가고 있었죠.



샘.


유월엔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어요. <플로베르의 앵무새> 효과죠.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123km. 노르망디의 센 강이 흐르는 도시 루앙으로요. 플로베르를 찾아서. 타이틀도 멋지잖아요. 올해는 프루스트도 읽어야 해요. 한국에서 독서를 연기했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올봄의 제 독서 프로젝트였는데 책도 펼치지 못하고 5월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네요. 프루스트를 완독 하면 파리에도 가보려고 해요. 세상에, 파리에 <르 스완 Le Swann>이란 프루스트 호텔이 있더라니까요.


기대하고 있던 알리시아의 졸업여행이 3학년 때는 없대요. 작년에는 기대하지도 않던 졸업여행 덕분에 카프카와 헤세 기행을 콩 볶듯이 다녀올 수 있었는데요. 원래 그런 법이죠. 기대와는 어긋나는 것. 기대도 않던 일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이런 게 인생의 묘미 아니겠어요. 시간이 없으면 만들고, 방법이 없으면 찾고요. 그래도 안 되면 기다려 보지요. 꿈속까지 따라오던 시아버지의 멘트. "멘쉬 Mensch(맙소사), 부헨벡 Buchenweg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내 바람인데!"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소망하는 일은 소박하더라고요. 부헨벡 7번지로 돌아가 아침을 먹는 것, 정원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는 일처럼요.


샘. 어머니는 좀 어떠세요. 안부 한번 여쭙는다는 게 여기 형편도 만만치 않아 늦었네요. 쾌차하셨기를 바라요. 오늘 아침 단톡 방에는 저희 시어머니 멘트가 떴어요. 시아버지와 통화를 하셨는데 목소리만 들으면 나무 한 그루도 통째로 해치우실 것 같다고요. 저희 시어머니 표현 좀 보세요! 평소 문학적이라 느낀 적이 없는데 이럴 땐 반하고 만다니까요. 정신의 건강함. 자신감과는 별개의 또 다른 삶의 같아요. 단순하고 튼튼한 힘. 이런 건 적극 배워야겠네요. 이제 알바를 가야겠어요. 샘께도 푸르름 가득한 오월 되시길요.




매거진의 이전글잘츠부르크에서 띄우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