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더, 양귀비꽃 그리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들
편지 33
독일의 봄의 절정은 보리밭처럼 온통 초록인 홉이 익어가는 들판에 핀 새빨간 양귀비꽃 같아요. 들판에 핀 꽃은 함부로 꺾으면 안 된다는 것도 배웠어요. 한 줌 꺽어왔더니 다음날 금세 시들어 버렸거든요.
그리운 샘.
1월부터 저희 집에서 살던 조카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갔어요. 집도 방도 구하기 힘든 뮌헨이니 신중하게 결정했겠죠. 올 때도 자유로웠던 것처럼 갈 때도 편안하게 떠났어요. 성인이니 알아서 하겠지 생각했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는 방임 주의자예요. 친조카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다지만 아마 친조카라도 그랬을 거예요. 알리시아도 만 18세가 되면 집을 떠나기로 했으니까요. 남은 9년 동안 나름 생각을 하겠죠. 방 구하기는 도와달라고 벌써 부탁하더라고요. 아르바이트는 어떤 게 좋을지 고민도 하고요. 저 역시 생각날 때마다 간단한 음식 레시피와 빨래를 내놓을 때 왜 양말을 뒤집어 놓으면 안 되는지, 모든 빨래는 왜 탈탈 털어서 널어야 하는지 보여주고 일러줍니다. 어릴 때는 보고 듣는 게 다 공부니까요.
어떤 각오로 일상을 사는가는 목표에 따라 달라질 듯해요. 독립과 자립은 먹고 자고 입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요리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빨래와 청소와 설거지와 정리정돈에 익숙하고, 몰두할 일이나 취미를 가지고 있고,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있을 때 혼자서 살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 물론 혼자서도 잘 놀 수 있어야겠죠. 며칠 전 알리시아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어떤 친구를 얻고 싶은가. 그 질문은 어떤 친구가 될 것인가, 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일 거예요. 답은 뻔합니다. 나를 이해해주고, 마음이 따뜻하고, 나와 마음이 통하고, 배울 점이 있고,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 그런데 그런 친구를 만나기도, 그런 친구가 되는 일도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제가 알리시아에게 말해준 톱 시크릿 하나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법이었어요. 잘 생기고 못 생기고를 떠나 외면부터 내면까지 매력적인 사람. 알리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더라고요. 솔깃한 거죠. 그런 방법이 있었어? 그걸 우리 엄마가 안다고? 당연하지! 친구가 되어달라고 징징거리지 마. 매력 없어. 그럼? 엄마가 왜 친구가 많은 줄 알아?(독일 말고, 한국에!) 몰라. 매력적이어서 그래! 요 대목에서 아이의 눈빛이 약간 의아하게 변했어요. 고개도 갸웃하고요. 이해합니다. 애들도 보는 눈이 있잖아요. 엄마가 왜 매력이 있냐고? 엄마는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매력이 있는 거야. 너는 그림을 잘 그리지? 글도 잘 쓰고. 책도 좋아하고.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열심히 할 때 가장 매력적인 거야. 그럴 때 빛이 나. 그러면 친구들도 막 생겨. 너도 해 봐..
논리도 없는 엄마의 말을 알리시아가 얼마나 이해했을지 모르겠네요. 그런 건 안 중요한지도 모르고요. 그다음은 아이의 몫이니까요. 한국 나이로 열 살인 알리시아의 고민은 점점 친구라는 타인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자연스럽고 바람직합니다. 제 품을 떠나는 것이 하나도 서운하지 않아요. 곧 사춘기도 다가오겠죠. 아이도 엄마도 힘들기도 할 겁니다. 저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할 생각이에요. 한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 정작 우리는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던 그 시간들을 알리시아를 통해 다시 지켜보기를 할 생각이에요. 알리시아와 제 자신에게 주는 선물. 샘처럼 제 글을 읽어주실 분들, 친구들과 가족들과 독자분들께도요.
샘.
조카가 떠나던 날 저는 빅투알리엔 마켓에서 25유로를 주고 라벤더 화분을 하나 샀답니다. 아직 꽃도 피우지 않은 촘촘한 꽃줄기들이 얼마나 탐스러운지 첫눈에 반해버렸어요. 작년 봄에도 작은 라벤더 화분을 두어 개 키워봤는데 꽃과 향기가 여름이 다 가도록 지속되더군요. 가을에는 마른 꽃줄기를 잘라 화병에 담았더니 향도 오래갔고요. 감동이었어요. 화분에 담긴 꽃 하나가 주는 기쁨이 그토록 클 줄 몰랐어요. 꽃 이야기를 하니 지난주에 시어머니를 양아버지 재활 클리닉으로 모셔다 드리고 올 때 들판에서 보았던 양귀비꽃도 생각나네요. 독일의 봄의 절정은 보리밭처럼 온통 초록인 홉이 익어가는 들판에 핀 새빨간 양귀비꽃 같아요. 들판에 핀 꽃은 함부로 꺾으면 안 된다는 것도 배웠어요. 한 줌 꺾어왔더니 다음날 금세 시들어 버렸거든요.
6월엔 프루스트를 읽기 시작했어요. 서울에서 프루스트 강의를 들을 때 완독을 못했는데 그 사이 총 6권이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2권이 추가되어 총 8권. 새로 나온 두 권도 받았으니 읽을 일만 남았네요. 평생 책과 함께 하시던 샘이 근래에 책 읽기를 그만두신 것을 보고 저 역시 분발하기로 했어요. 언제까지 독서가 보장되는 게 아님을 알았거든요. 주말에 1권을 펼쳤더니 얼마 안 가 이런 구절을 만났어요. 화자의 할아버지는 스완 아버지와 절친이었는데, 스완 아버지가 밤낮으로 간호하던 아내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를 방문했죠. 눈물에 젖은 친구를 입관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잠시 빈소 밖으로 데리고 나와 햇빛 비치는 정원을 몇 발자국 거닐 때였어요. 아내를 잃은 슬픔도 잊고 갑자기 친구가 이렇게 소리쳤답니다.
'아! 여보게, 이런 좋은 날씨에 함께 산책하다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자네는 이 모든 나무들이며 산사나무들, 그리고 자네가 한 번도 칭찬한 적 없는 이 연못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자네는 침통한 표정이구먼. 이 산들바람을 느끼는가? 아! 누가 뭐래도 사는 건 좋은 거라네!'
샘.
주말부터 뮌헨에도 성큼 여름이 다가왔어요. 주말부터 이번 주 수요일까지 기온이 25도에서 28도까지 오른대요. 여기서 최소 10도가 더 높을 한국의 여름이 잘 상상이 가지 않아요. 일부러 앞당겨 걱정할 필요는 없겠고요. 견딜 수 있으면 견디고, 못 견디면 또 방법이 있을 테니까요. 여름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은 벌써부터 덥다고 들었어요. 모쪼록 무더위에도 잘 적응하시길요. 작년에 뉴욕에 가신 소식을 들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다시 뉴욕 소식을 듣겠네요. 편안하고 무탈한 일정되시길 바라요. 다음 편도 프루스트가 되도록 저도 열독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