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Aug 09. 2019

입추에 바람이 불었다

교대 꽃카페에 갔다


지난 일은 왜 우리를 화나게 하지 않는가. 지난 일은 지난 일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좋겠다 싶었다.



어제는 입추였다. 작년 입추에 뮌헨에는 비가 내렸다. 이번 주 서울은 시작부터  번이나 37도를 찍고 이후에도 계속 35도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에 올 때부터 각오를 한 탓인지 외출을 자제해서인지 지금까지는 서울의 폭염을 그럭저럭 견디고 다. 어제가 입추라는 걸 알고는 바람에 가을을 느꼈다너무 한가. 저녁 무렵 친구를 기다리며 그랬다는 말이다. 오전에는 교대의 예전 단골 꽃카페에서 아이의 친구이기도 하고 내 친구이기도 한 연지네를 만났다. 그 사이 두 동생들은 컸고, 연지는 예쁘고 차분한 초등 5학년이 되었다.


카페 사장 언니도 그대로였다. 단발에 키가 크고 선한 표정에 아이에게 꽃을  주던 사람. 어제도 아이는 작은 꽃다발을 선물받았다. 예전처럼. 그럴 때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오래 알던 사람이란, 오래 가던 카페란 이리도 정다운 존재로구나. 꽃을 받든 안 받든. 카페에서는 아이가 좋아하던 와플을 먹고 연지네와 카페 오른쪽 교대 밥상에 들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옛날 돈가스를 한두 점 먹어봤는데 더위에 다시 입맛을 잃었는지 맛을 알지 못했다. 내가 주문한 고등어 조림은 무척 매웠으나 연지 엄마가 좋아하던 제육볶음을 사 줄 수 있어 좋았다.


연지 집에서 연지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살아온 내력이 비슷한 우리는 서로에게 공감이 잘 되는 편이다.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며 아이들을 사랑으로 안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황소 고집에다 생떼를 쓰는 아이를 보며 스스로의 인내심에 한계를 느낄 때. 그럴 때마다 수도 없이 자신을 질책하고 죄책감이 뒤따른다고 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누구라도 천사표 엄마가 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데.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지 않나. 남편에게 헌신하며 검소하고 소박하게 아이들과 살아가는 그녀에게 누가 그런 완벽함을 요구할 수 있겠나. 그러니 연지야, 힘 내..



저녁 무렵 다시 교대의 그 꽃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약속한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바람은 불어오석양빛도 가늘어졌다. 차소리. 옆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영화 음악. 간간이 오토바이 지나는 소리. 끊어졌다 이어지는 매미 소리. 교대 쪽은 1년 반 사이 변해있었다. 떠날 때보다 가로수 잎들이 무성해졌다. 바람은 입추답게 불어오고 햇살은 따갑지가 않았다. 정다운 옛 카페가 남아있다는 것. 거기에 앉아 책을 읽었고, 기서 오월의 다알리아를 만났, 거기서그리운 당신들을 만났다.


야외 테이블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사랑하 사람들이 분주히 추억의 문을 열고 들어오고 나갔. 아직까지 만나는 사람도 있고, 마음의 빗장을 닫은 사람도 있었다.  얼굴들지켜보고 싶은 생각기다리는 친구가 빨리 왔으면 싶은 마음과 늦게 왔으면 싶은 마음이 반반이었다. 이 순간이 조금 더 지속 되기를. 아주 잠시만 더. 저녁의 햇살은 더욱 아래로 눕고, 미풍은  몸을 부드럽게 쓸고갔다. 지난 일은 왜 우리를 화나게 하지 않는가. 지난 일은 지난 일 그대로 내버려 두어좋겠다 싶었다.


기다리던 친구와는 카페 왼쪽에서 밥을 먹고 카페로 돌아와 차를 마셨다. 우리는 대학 시절에 만났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지낸 세월도 많았다. 그럼에언제라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소녀 같은 친구도 어느 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세월은 평등하구나. 25년 동안 대기업에서 일했던 친구는 연말에 일을 그만 둘 생각이었다. 영어를, 민화를,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놀라워라! 변화란 언제나 기분 좋은 것. 나든 친구든 남이든. 더더구나 입추에, 바람 속에. 


매거진의 이전글 넓고 평평하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