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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ug 08. 2019

넓고 평평하게

내 친구 J


초등 교사인 J는 담임을 맡은 6학년 반 아이들과 수직 쌓기와 수평 쌓기 놀이를 했다. 넓고 평평하게 쌓아야 더 높이 쌓을 수 있고 무너지지도 않는다는 걸 배웠다.


친구 J가 준 풍경이 언니네 출입문 부처님과 잘 어울렸다!


J를 만났다. 우리는 중학교 때 친구.  사이 오랜 세월이 흘렀다. 멋 모르던 십 대 시절. 친구는 공부를 잘했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친구와의 첫 만남은 드라마틱해서 건망증이 심한 나조차 잊지 못한다. 아침 등교 때 친구가 선도부장으로 있던 선도복장 불량인가 아니면 지각으로 걸렸다. 선도 선생님은 안 계시고 J가 완장을 차고 있다. 나는 간 크게 교실로 내뺐는데 예나 지금이나 나보다 몸이 가벼웠던 J 까지 쫒아왔다. (친구는 기억  못 하겠지? 이런 추억은 발목이 잡힌 자들의 몫이다.)


이십 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J여름방학 때마다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때는 서울이 동경만큼 멀게 느껴지던 때였다. 삼십 대엔 내가 외국에서 살았다. 1년에 한 번 한국에 올 때마다 부산에서 J와 친구들을 만났다. 멤버는 . 셋은  하나씩 둔 엄마가 되었, 오십이 되었. 친구들은 아직도 일을 있고, 초등학교 교사인 J도 절에서 불교 공부에도 열심이다. 갱년기라는 강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이좋게 건널 듯하다. 최근 몇 년간 전과 달리 뾰족하고 까칠했던 J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 것도 기뻤다.


J와는 어제 만났다. 친구얼굴은 내가 기억하는 그때처럼 밝았 목소리에도 기운이 넘쳤다. 그게 J고, 그 친구다웠다. 배우기좋아하고, 생각이 복잡하지 않고, 아이처럼 호기심이  친구 말이다. 근에는 담임을 맡은 6학년 반 아이들과 수직 쌓기와 수평 쌓기 놀이를 했다고 한다. 넓고 평평하게 쌓아야 더 높이 쌓을 수 있고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아이들에게는 많이 놀고, 책도 읽고, 싸움도 해가면서 즐기라고 방학 숙제를 많이 안 내줬다고. 이해된. 20대 새내기 교사 시절  동네를 샅샅이 뒤져 이웃집 개와 고양이를 끌어안고 교실에 모의 수업을 했다던 친구니까.


언니네 집 앞 공원. 서울에서 공원 앞에 사는 기쁨!


다음은 J가 들려준 에피소드다. 자신의 모습을 자주 돌아보게 되었다며. 친구가 다니는 절에 아담체구의  비구니 스님이 한 분 계셨다. J의 새 구역 담당 스님이었다. 열심히 정진하기를 모토로 친구가 스님을 처음 만나던 날이었다. 조금 늦게 모임방에 도착하니 보살들이 전부 방바닥에 누워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어지스님의 말씀. '절에는 놀듯이 다니세요.' '공양간 봉사하시느라 수고하셨으니 오늘은 쉬세요.' J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마음공부를 하고 싶어있는 시간 없는 시간 쪼개서 멀리서 달려오는 것 아닌가. 놀려고, 누워서 쉬려고 오는  아니란 말이지.


절에 다니기가 싫어졌다. 한두 번 빠지다가 2년간 결석을 밥 먹듯 했다. 가끔씩 나가면 스님은 법문 준비도 소홀하신 듯했다. 옆에 있는 스님이 이러저러하시다는 사는 얘기가 였다. 신뢰가 가지 않았다. 어느 날 보살 한 명이 질문을 날렸다. '스님, 진리가 뭔가요?' '5층 법당이 꽉 차서 4층 법당으로 내려가라면 군말 없이 내려가는 거예요.' 그 대답에 어안이 벙벙했다가 잠시 전류가 흘렀다. 잘 사는 게 무엇인, 라는 질문에는 '잘하고 가는 게 잘 사는 '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가?


2년 후 스님의 임기가 끝날 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여쭈었다. 스님이 앞에 놓인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비스듬히 내려놓으며 물었다. 전화기가 렇게 놓여있으면 어떻게 하죠? 바로 놓아야죠. 물건이 거꾸로 놓여있다면? 돌려놓고요.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그게 잘하고 가는 겁니다.' 친구의 가슴에 회한이 넘쳤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이리 없었나? 그 후로 겸손하고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았다.  한마디도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되리라 작정했다. 이야기를 들려주던 J의 얼굴에는 근심도 시름도 뾰족함이나 까칠함도 찾을 수 없었다. 젊어서부터 마음이 넓고 평평하옛 친구를 다시 찾은 기분이라니. 한국에 와서 소중한 . 나이와 함께 변해가고 성장하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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