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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ug 06. 2019

대기만성이라는 말

친구의 사주를 듣다


E로부터 본인의 컴퓨터 사주 이야기를 들었다. 컴퓨터가 그러더란다. 자신은 '대기만성'이라고. 대기가 만성되는 그날은 언제 오려나. 50대면 충분하지 않은가, 컴퓨터 도사여.


E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


작년 1월 독일로 떠날 때였다. 당시 한 달 가까이 송별회를 했는데 그때 그 멤버들을 다시 만난 일요일 오후. 그래 봐야 우리 자매와 J언니, 그리고 내 친구 Y와 소설을 쓰는 E 다섯이었다. 또 있다. 우리 아이와 친구네 두 딸을 포함 어린 아씨들 셋까지 합치면 무려 여자만 여덟 명! E의 말대로 좀처럼 기 힘든 그림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와 이모들은 또 그들 대로 여름밤이 깊도록 얼마나 웃음꽃을 피웠그제 한국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우리는 점심때 만났다. 친구 Y가 검색한 3호선 도곡역 부근의 마산 아구찜은 내 평생 먹은 아구찜 중 최고였다. 안 매우면서 맛있어서. 거기다 애들이 좋아했던 떡사리는 어떻고(왜 사진 찍는 걸 잊었을까!). 메인 요리에 딸려 나온 반찬들은 요 며칠 계속해서 나를 감동시키는 테마였다. 어릴 때 즐겨먹던 감자조림. 새하동치미! 이런 건 단연코 한국에만 있는 감동이자 미덕이다. 그날 밥상을 조용히 장식하잔멸치 볶음, 새콤달콤했던 미역무침. 맨 마지막에 먹은 볶음밥은 별미 중 별미였다. (이런 건 내겐 집밥 수준!)


한국에 도착 후 사흘 동안 입맛을 잃은 것도 처음이었다. 며칠 동안 무엇을 먹어도 맛을 몰랐다.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했다. 한국에 와서 얼마나 살이 찔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그런데  상황이 오래갈 리가 있나. 토요일 저녁의 차가운 냉면과 따뜻한 떡갈비의 궁합. 잘 구운 고등어. 일요일 점심의 아구찜은 잃은 입맛을 단번에 돌아오게 했다. 기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친구가 집에서 애호박 대신 감자를 채 썰어 넣고 끓여준 칼국수는 조금밖에 못 먹었다. 배가 불러서. 두고 두고 생긱날 것 같다.


주말 저녁을 빛내 주던 밥상들! 떡갈비 냉면, 고등어, 아구찜, 그리고 친구의 칼국수.


그날 밤 친구의 단아한 2층 아파트에서 단편소설을 쓰E로부터 본인컴퓨터 사주 이야기를 들었다. 컴퓨터가 그러더란. 자신은 '대기만성'이라고. 10대까지 미안해도 그렇게 미안한 사주가 없다나. 소위 초년복이 없다는 뜻인데 나 역시 자주 듣던 소리다. 컴퓨터라도 거기까지는 인간적으로 들렸다. 그 후 그녀의 20대와 30대와 40대 초반의 미안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  아무도 캐묻지 않았다. E의 대기가 만성되는 그날은 언제 오려. 50대면 충분하지 않은가, 컴퓨터 도사여. 


밤은 깊어 E의 착한 남편분이 수원에서 차로 아내를 모시러 왔다. 그때까지 우리는 E를 놀려먹느라 웃다가 울다가 눈물을 쏙 빼기를 여러 번이었다. 아이는 친구 집에서 친구 아이들과 파자마 파티를 하고 싶다고 남았다. J언니는 양재까지, 우리 자매는 교대까지, 선한 E의 남편분 차를 얻어 타고 다. 차 안에서 E가 말했다. 남편 만나기 전 배우자의 조건으로 딱 세 가지만 빌었다고. 키가 클 것. 진실할 것. 밝고 환하게 웃을 줄 알 것. 만나고 보니 소원이 다 이루어져 있더란다. 단 한 가지, 돈만 빼고. 그 소리에 네 여자와 E의 남편분까지 차가 떠나갈 듯 웃었다.


작년에 나 떠나고 E가 많이 아팠다는 소리를 들었다. 단편 소설 10편을 완성했행복하게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기도. 집에서 죽어라 과외를 하며 서울로 글쓰기 수업과 문학 수업 들으러 다니느라 E는 지난 몇 년간 참 열심히도 살았다. 아구찜을 먹으러 가기 전에 조금 늦게 도착할 거 같다는 우리 톡을 받고 E가 한 일을 어찌 잊나. 무섭도록 뜨거운 대낮에 나 주려고 낯선 동네에서 꽃집을 찾느라 만났을 땐 땀이 비 오듯 흐르던 E의 얼굴. 땀방울 속에서 반가움에 넘치던 미소. E야, 다음부터는 꽃 같은 안 사도 돼. 상투적인 표현이긴 해도 말할래. 니가 꽃이야. 진짜야..


저 초승달이 다 차면 대기는 완성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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