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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ug 03. 2019

내게 지금 부족한 게 뭔가

친구의 고백


'어느 날 새벽에 잠이 깼는데 갑자기 이런 소리가 들리더라. 내게 지금 부족한 게 뭐지? 여기서 대체 뭐가 더 필요하지?'

예술의 전당(위) 지인과 함께 나눈 음식(아래)


오늘은 귀국 사흘째인 금요일. 저녁에 혼자 카페에서 조용히 글을 쓰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누가 말했지? 한국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 오전에는 이틀째 못 잔 잠을 보충해야 했고, 점심때 만난 지인과는 점심에 차에 저녁까지 먹고 나서야 헤어졌다. 비행기에서 보낸 밤을 포함 연달아 이틀을 지샌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이런 밤샘을 견딜 나이가 아니라는 것. 시차 극복을 위해 목요일 밤엔 이모부가 준 멜라토닌 한 알을 먹고서야 무사히 잠들 수 있었다.


지인과는 함께 나눈 두 끼 음식 만큼이나 담백한 시간을 가졌다. 밥이면 밥, 차면 차, 저녁까지 사 주시려는 것을 겨우 말려서 저녁만 내가 샀다. 학용품을 사주라며 데리고 오지도 않은 아이 용돈까지 주셨다. 이런 경우가 정말 미안하다. 점심과 저녁비빔국수와 물밀면을 먹었는데 둘 다 깔끔했다. 특히 물밀면은 살얼음이 살짝 낀 국물에 새콤하면서 맵지도 짜지도 않은 열무가 압권이었다. 이런 것이 한국의 여름 맛! 국숫집 밖 능소화가 핀 골목길도 좋았다.


지인은 평소 말씀이 적고 진중하신 편. 동작도 결코 빠르다 할  없는데 귀국 소식을 듣고는 한달음에 달려와 주셨다. 팔월 중순에는 1주일 정도 부산에도 다녀와야 한다. 서울에서 만날 사람은 시간 날 때 서둘러 만나 두는 게 낫겠다 싶어 연락을 받고 곧바로 약속을 잡았다. 그동안 아프시다는 소식에 걱정했는데 건강한 모습에는 반가웠 지난 추억을 나눌 때는 즐거웠다. 이런 만남이라면 하루 정도 글을 양보해도 다.


예술의 전당 카페 모차르트(위)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아래)


전날 점심은 회사 일이 바쁠 텐데도 오후를 통째로 비우고 나와준 J언니와 친구 Y 그리고 친구 아이들과 우리 아이를 데리고 '알밥'을 먹으러 갔다. 아이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알밥 한 끼로. 얼마나 맛있었으면 누룽지만 빼고 돌솥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아이가 숟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한 번 더 먹으러 올 거야!' 소원은 금방 이루어졌다. 오늘 저녁 무더위 속에 할머니와 이모야의 손을 잡고 두 번째 알밥을 먹고 돌아왔다. 오늘도 혼자서 다 먹었다고, 누룽지도 다 먹었다고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아이가 고백했다. 알밥이 한국 대표 음식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그날 점심을 먹은 후에는 가까운 예술의 전당에서 차를 마셨다. 점심은 친구가, 차는 언니가 샀다. 이렇게 자꾸 얻어먹기만 하면 안 되는데. 미안한 마음에 오며가며 택시비만 냈다. 그것도 내가 우겨서 겨우. 차를 마신 후 아이는 친구 집에, J언니와 나는 뮌헨에서 <그리운 편지> 띄우던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유쾌한 저녁 식사. 시원한 맥주 한 잔. 이디야 커피숍까지 걸어가던 길. 서늘하고 쾌적한 커피숍. 페리에. 끝없이 나누던 대화. 건강해 보이시는 선생님 모습에 더욱 안심이 되는 밤이었다.


다시 아이를 데리러 친구 으로 돌아간 시간이 밤 10시. 친구의 이야기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건 한국이 아니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극강 스케줄. 그러나 친구의 다음과 같은 고백을 듣는 밤에는 시차도 시간도 모두 잊었다. 배우자와의 문제오래 힘들어하던 친구의 말. '어느 날 새벽에 잠이 깼는데 갑자기 이런 소리가 들리더라. 내게 지금 부족한 게 뭐지? 여기서 대체 뭐가 더 필요하지?' 그리고 행복해졌다. 친구도 나도. 자정이 넘어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무섭지도 피곤하지도 않다니. 한국에 온 게 맞긴 맞구나!


아이에게 한국 음식은 첫째도 알밥, 둘째도 알밥, 마지막도 알밥!!!


P.s. J언니가 저녁에 언니 집으로 오라고 했는데 시차 때문에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 사양했다. 저녁엔 좀 쉬어야겠다고. 그래 놓고 지인과 저녁까지 놀다니! (언니야, 미안..) 다행인  건 내가 있는 곳까지 지인이 와주셔서 내 동선은 점심, 카페, 저녁 세 곳을 합쳐도 100미터를 넘지 않았다. 시원한 실내에 있었더니 체력 소모도 더위 먹을 일도 없었다. 모쪼록 언니가 넓은 아량으로 서운해하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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