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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l 31. 2019

드디어 한국!

능소화 그리고 북카페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으러 가며 아이가 한 말. '진짜 한국이야? 우리가 한국에 온 거 맞아?' 저렇게도 좋구나. 아이의 귀국 퍼포먼스는 CU 편의점의 삼각 김밥이었다!  



드디어 한국이다! 화요일 정오에 루프트 한자 Lufthansa 비행기로 뮌헨 공항을 출발했다. 비행기는 거의 만석. 운 좋게도 창가 세 좌석을 아이와 둘이서 쓸 수 있었다. 루프트 한자의 좋은 점. 좌석 앞쪽에 개인 영화 스크린이 있다는 것. 아이와 나는 가운데 자리를 비우고 각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영화 세 편을 보자 비행기는 수요일 새벽 5시 19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영화 운도 좋았다.  편은 <누구나 아는 비밀><앙코르:워크 더 라인 Walk the line><팬텀 스레드 Phantom Thread>. 이 중 나를 두 번이나 울린 영화는 <앙코르>. 정확히는 주인공 호아퀸 피닉스가 나를 울렸다고 해야 맞겠지. (그가 주연했던 영화 <허 her:그녀>를 봤으면서도 그를 몰라보다니, 헐!)


<누구나 아는 비밀>은  감동을 주지 못했다.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셋 중 최하위. 한국어 자막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나머지 영화들도 마찬가지긴 한데. 문제는 주인공 남녀의 연기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것. 내겐 두 배우만 보였다. 구성도 결말도 매끈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바로 감독의 의도일 수는 있겠다. 인생이 소설이나 영화처럼 두 시간 만에 봉합되고 완결되지야 지. 그래도 보는 내내 답답했다. 나는 영화의 미덕을 적당히 갖춘 상품에 더 감동하나? 아니면 <앙코르>처럼 훌륭한 연기와 감동적인 스토리 라인에 끌리나? (그래서 보고 싶은 영화가 점점 줄어드는 안타까움..)


새벽에 공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빗방울이 떨어지는 정도였는데 아이 이모가 택시로 도착할 무렵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참 시원하게도 내렸다. 귀국 환영 인사치고는 화끈하고 박력이 넘쳐서 마음에 쏙 들었다. 내리려면 저 정도는 돼야지. 출입국 통과는 빨랐고 짐도 금방 찾았다. 공항 터미널로 나오자 6시. 아이의 귀국 퍼포먼스는 CU 편의점의 삼각 김밥이었다! 비행기에서 두세 시간 자고 배가 고프다고 아침으로 나온 오믈렛과 빵 반쪽을 순식간에 흡입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독일에서도 아침에 밥을 안 먹었기에 한국에 도착해서도 밥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할머니 계란찜과 생선 구이를 먹고 싶다는 게 아닌가. 밥 한 공기를 제일 먼저 비운 건 나였다!


그리웠던 이모야의 집(위) 할머니의 소박한 밥상+저녁의 삼겹(아래)


할머니 댁에서 밥을 먹고 소파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네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씻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맑아졌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글쓰기를 어쩐다. 내가 한 달을 묵을 언니 집 근처에 넓고 편안한 북카페가 있다니 그것만 믿기로 했다. 저녁은 삼겹. 아이의 귀국 이유의 전부였던 알밥은 내일로 미뤘다. 조카 볼 생각에 밤새 한 잠도 못 잔 이모야를 위해서. 아이의 기쁨도 이모야 못지않았다.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으러 가며 아이가 한 말. '진짜 한국이야? 우리가 한국에 온 거 맞아?' 저렇게도 좋구나. 엄마는 덤덤한데. 기대가 없어야 한 달 후 담담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을 텐데. 그건 물론 엄마 생각이고.


엄마와 언니가 나란히 사는 골목길. 작은 빌라는 아담했다. 큰 집이 무슨 소용인가. 물론 커서 나쁠 건 없지. 형편이 좋다는 뜻이니까. 그게 안되면 작더라도 오손도손 모여 사는  답이다. 엄마 집도 언니 집도 마음에 들었다. 길만 건너면 공원이 있어 좋았다. 매일 언니 퇴근만 기다리던 엄마는 가을부터 동네 주민센터의 노래 교실에 등록하셔마음이 놓였다. 이른 저녁을 먹고 아이를 할머니와 이모에게 맡기고 동네 북카페로 왔다. 독일에서 귀했던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3,500원. 매일 아침 이 카페로 출근할 생각이다. 카페 오는 길 모퉁이에는 활짝 핀 능소화.


카페에서 글을 쓰다 혼자 웃었다. 과연 한국에 온 게 맞구나. 어디나 와이파이가 있고, 심지어 번개처럼 빠른 게 아닌가! 브런치에 글을 쓸 때 사진을 올려보면 안다. 독일에서는 오래 기다려야 한다. 인내가 필요하다. 그곳의 다른 모든 일처럼. 한국 오기 직전 월요일 점심. 뮌헨에서 은행에 들렀던 때 절감했다. 아이와 내 계좌를 새로 내려고 하니 예약이 필수란다. 그리고 그날 예약이 많다고 접수를 안 받아 주었다. 그럴 때 진심 한국이 그립다. 빠르고 정확한 한국의 서비스가. 어쨌거나 글도 다 썼으니 이제 집으로 간다. 한국에 와서 첫 글쓰기 숙제를 마쳐서 얼마나 개운한지!


아, 능소화 능소화!!!


P.s. 자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영화는 총 4개를 봤다. 키이라 나이틀리의 <콜레트>까지. 그녀의 <안나 카레니나>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자꾸 안나가 아닌 키이라 나이틀리가 보였다. 개인적인 취향을 말하자면 <비긴 어게인> 같은 캐릭터가 잘 어울리는 듯. 역시 난 과민한 것 같다. 보라는 영화는 안보고 배우만 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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