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당신도 알게 된다

호텔 26

by 뮌헨의 마리


미나가 생각하는 더 중요한 문제는 리스펙트. 돈보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었다. 미나는 호텔 측이 자기에 대한 존중이 제로에 가깝다고 했다.




브런치에 호텔 할머니 뒷담화를 하고 출근했더니 월요일 아침 마음이 뒤숭숭했다. 할머니 얼굴을 보기도 미안하고. 사람이 어찌 100% 좋거나 나쁠까. 할머니는 성격이 급한 다혈질에 뒤끝 없는 스타일. 그 다혈질에 데고, 뒤끝 없음에 허탈한 건 본인의 몫일뿐. 미나는 사흘간 휴무였다. 호텔 손님은 많이 줄어있었다. 할 일이 없는 무료함을 견디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어제오늘 미나 일로 분위기가 안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오늘은 할머니가 개들과 산책을 나가신 사이 내가 프런트 전화를 받았는데 구직을 원하는 젊은 남자였다.


사실 내 케이스는 미나와는 다르다. 나는 먼저 그만두니 오히려 고마운 케이스라고 할까. 앞으로 석 달간 동면기에 들어갈 호텔 입장에서는 미나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사직서를 낼 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주인 할머니도 딸도 아들도 주말을 가족과 보내려는 마음을 이해한다며, 바쁠 땐 주말에 한 번씩 도와달라, 나도 그러마, 덕담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예의 바른말도 몇 마디 덧붙였다. 함께 오래 일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덕분에 많이 배웠다. 많이 배웠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미나의 사직 이유는 놀라움 자체였다. 토요일 오후 퇴근 후 집에서 쉬다가 미나의 전화를 받았다. 흥분한 목소리로 호텔에 그만두겠다 했단다. 도대체 이유를 뭐라고 말했는지 궁금했다. 호텔 측도 마찬가지였는지 도대체 퇴사 이유가 뭐냐고 할머니 딸이 묻더란다. 미나의 대답을 듣고 나는 놀라서 넘어갈 뻔했다. 답이 정직해도 너무 정직해서. 첫째, 월급이 너무 적다. 둘째, 당신 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 그녀도 놀랐는지 자기 어머니에게는 직접 얘기하라고 했단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미나의 봉급이 나와 같다는 것. 나는 6시간 근무고, 미나는 8시간 풀타임 근무인데도 말이다. 10월 중순 옥토버 페스트 전까지는 미나도 6시간 근무였다. 그게 좋은 이유는 이후에 일하는 시간은 오버타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는 오버타임 일이 많지 않으니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미나로서는 치명적이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월 20일에 매일 두 시간씩 무보수로 일하게 된 셈이니까. 월 400유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미나와 그녀의 남편이 호텔의 감봉 조치에 화가 난 이유였다.


내가 출근하지 않았던 일요일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할머니 딸이 또 묻더란다. 도대체 진짜 이유가 뭐냐고. 미나가 대답했다. 어제 말한 그대로라고. 월급이 너무 줄고, 당신 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말에 할머니 역시 화가 단단히 나셨고, 딸이 급히 조정에 들어갔다. 그럼 다시 6시간으로 바꿔주면 되겠냐. 미나가 말했다. Too late! 새 호텔의 봉급이 우리 호텔보다 았다. 딸이 말하길 자기들은 그 정도로 올려주기는 어렵다고. 그리고 The End. 호텔은 지역 신문에 구인 광고를 냈다.


미나의 남편은 호텔 근무 경력만 몇십 연차인 인텔리였다. 독일에서 의대를 다니다 그만두었다고. 그리스 출신인데 독일 여의사와 이혼 후 미나를 만났다. 독일어와 영어 구사가 완벽하단다. 미나의 새 호텔도 당연히 그녀의 남편이 구해주었다. 호텔 측의 부당한 감봉에 대한 대처였다. 12월 초쯤 할머니가 미나의 독일어 때문에 쓴소리를 했다. 독일에 온 지 2년, 호텔에서 일한 지 1년인데 아직도 독일어가 제자리라고. 미나가 해결책이 있다고 하자 할머니가 반색하시며 독일어 수업을 들을 거냐 물었다. 미나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직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단다.





미나가 생각하는 더 중요한 문제는 리스펙트. 돈보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었다. 미나는 호텔 측이 자기에 대한 존중이 제로에 가깝다고 했다. 예를 들어 매일 새벽 6시 반에 출근하던 미나는 내가 온 이후 갑자기 7시에 출근하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6시 반에 출근해야 했다. 미나에게도 나에게도 피곤한 일이었다. 나는 미나가 먼저 와서 세팅해주는 게 좋았고, 아이 등교 때문에 나중에 출근하고 싶었다. 미나는 미나대로 생체 리듬이 6시 반에 맞춰져 있었고, 이후 시간은 대중교통의 배차 간격도 편리하지 않았다. 내가 건의하자 딸이 말하길 미나에게 지출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감봉. 미나의 퇴사는 내가 들어온 직후부터 예고된 셈이었다. 미나가 새 호텔에 인터뷰를 다녀온 이야기를 듣고 신기해서 내가 물었다. 인터뷰는 어떻게 했어? 호텔 주인인 독일인 부부 중 부인이 이태리어와 프랑스어가 되더란다. 독일 남편에겐 부인이 독일어로 통역해 주더라고. 객실은 우리 호텔보다 두 배로 많고, 종업원수는 총 11명이라 했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인격적으로 좋은 사람들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안심이 되었다. 놀라운 건 미나가 독일어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된다. 당신도 나도 누구라도. 누가 어떤 사람인지. 일을 하다 보면 무슨 소린들 못하겠는가. 정신없이 바쁠 때 불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온갖 소리를 다 하거나 듣게 된다. 그것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평소에 잘하는 게 중요하다. 화를 냈으면 미안한 줄도 알고, 열심히 했으면 고마운 줄도 알아야 한다. 독일어를 못한다고 감정까지 없겠는가. 미나가 이직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나도 어렵다고 생각했으니까. 오죽하면 그랬을까. 시간이 지나면 느끼게 되겠지. 누군가의 빈자리. 호텔 1층 주방에서 레스토랑 지나 지하 창고 지나 2,3,4층 객실까지. 역시 미나 같은 동료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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