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주인 할머니와의 마지막 대화도 다정하게 끝났다. 바쁜 주말에는 좀 도와 달라. 네 그럴게요, 프라우 코프나 Frau Kofna. 그동안 감사했어요.
불 켜진 곳이 내가 4개월간 일했던 마리아힐프 호텔 Hotel Mariahilf
독일의 공휴일이었던 월요일 아침. 호텔로 마지막 출근을 했다. 원래 나의 마지막 근무 예정일은 12월 31일이었다. 하루 전날 할머니 딸의 문자를 받았다. 내 초과 근무 시간이 남는다며 출근을 안 해도 된다고. 이런이런! 제일 먼저 든 걱정은 미나였다. 혼자서 어쩌나. 내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텐데. 손님도 엄청 많을 텐데. 나중에 들으니 무려 50명이었다고. 둘이 일해도 힘든숫자인데 어떻게 혼자서 감당했을까.그녀의 일 솜씨는 끝까지 나를 놀라게했다.
호텔 측의 실수로 새해에 이틀을더 일해야 했다. 1/4(토) 그리고 1/6(월). 그렇다고 화가 나지는 않았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나 역시 4개월 동안 일하며 크고 작은 실수를 했다. 엄밀하게 말해서 호텔에 손해를 끼친것이다. 이틀동안 성심 성의껏 '나 홀로 정산'하는 기분으로 일했다. 첫날엔 주방의 통유리를 닦았고, 둘째 날엔 냉장고를 정리했다. 호텔 주인 할머니와의 마지막 대화도 다정하게끝났다. 바쁜 주말에는 좀 도와 달라.네 그럴게요, 프라우 코프나 Frau Kofna.그동안 감사했어요.
새벽마다 지나갔던 마리아힐프 성당과 마리아힐프 광장.
호텔을 그만두며 생각했다. 사람도 일도 끝이 좋아야 한다. 언제까지나 기억 속에 남는 건 마지막 모습이기 때문이다. 좋은 인연은 언제 만나도 반갑겠지. 문제는 안 좋은 인연이다. 평생 안 만나고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무조건 잘 헤어지고 볼 일이다. 물론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안 좋게 헤어지면 마음이 편치 않으니 어쩌나. 인연 불변의 법칙이라불러도되겠다. 오죽하면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겠나.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만난다.
다시 호텔에서 일하게 될 날이 올까. 잘 모르겠다. 한 번쯤 일해 보고 싶은 곳이몇 군데 있어서. 예를 들면 며칠 전에 들렀던 우리 윗동네 카페가 그렇다. 낡고 오래된 카페. 같은 장소에 한 50년은 있었을 것 같은. 밖에서 보면 허름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의외로 아늑한. 인터넷이나 와이파이 등 현대 문명은 명함도 못 내밀 듯한. 버스 정류장 앞이라 시끄러울줄 알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는순간 바깥의 소음이 뚝 멈춘 건기분 탓이겠지? 보기 드물게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문을 받고 테이블로 직접 서빙해 주시는 곳.
그런 곳이라면 늘 오는 단골들과 금방 친해지고 정도 들겠지. 한두 번 오고 마는 여행객이 아니라 매일 만나는 이웃일테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베를 짜듯 날실과 씨실처럼 촘촘한 삶들도 엿보게되겠지. 언젠가는 사람의 한 평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흐르는지 그리하여 마침내 가닿는곳이 어딘지도 알게 될까. 왜 누군가는 하늘이 무너지는 병고를 겪어야 하고. 왜누군가는 부모를, 자식을, 사랑하는 이를 잃고 울어야 하는지. 그런 슬픔을 건너는 이의 심정을 헤아릴 날도 올까.어려울 것이다. 강물의 깊은 속을 알기 어렵듯. 오래 전 알던 이의 부고를 듣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는것처럼. 호텔 일을 마치며 인연을 생각하다 마음이 너무 멀리까지 가버렸다. 다시 정신을 챙겨야지. 새로운 일도 기다리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