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직장 회사 구내 식당인 칸티네에서 첫 주를 보냈다. 살아남았다. 사흘 동안 출근 때마다 프로메테우스를 생각했다. 매일 반복되는 고통을 그는 어떻게 견뎠을까. 넷째 날 새벽길을 걸으며 불현듯 생각했다. 에브리데이 뉴데이. 기쁨도 고통도 에브리데이 뉴데이.
먹구름이 몰려오던 출근 첫째날, 둘째날, 그리고 셋째날
직장을 정하는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내 기준은 세 가지다. 봉급이 많거나, 사람이 좋거나, 주말에 쉬거나. 쾌적한 근무 환경이나 좋은 풍경은덤이다. 새해부터 출근한 새 직장은 세 번째조건과 덤에 해당했다.새 마음으로 출근하기 위해 아이의 겨울 방학 동안 나 역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독일의 겨울 방학은 2주간. 이번 방학은 12월 21일(토)부터 공휴일인1월 6일(월)까지 16일간이었다. 출근 전 호텔에 이틀 근무한 것을 합해도 충분한 휴식이었다.
독일에서는 회사의 직원 식당을 칸티네 Kantine, 학교나 대학의 구내식당은 멘자 Mensa라고 부른다. 독일 특허청 칸티네에는 한쪽에 카페테리아 공간도겸하고 있다. 칸티네는 10층 건물의 꼭대기층인데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해가 잘 들어오고 뮌헨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침마다 일출도 볼 수 있다. 1월의 일출은 출근 두 시간 후인 아침 8시. 첫 주는 다가올 주말과 일출 풍경 하나로 버텼다.근무 시간이 길고 풀타임인데도 봉급은 호텔보다 적고, 동료들은 버거웠다.
내가 출근하는 독일 특허청. 맨 꼭대기층이 칸티네. 전망 최고(위)! 다리만 건너면 도이치 뮤지엄(아래)이다.
원인은 내 근무 조건이었다. 첫째 날 점심을 먹으며 2시 반에 퇴근한다고 말했다가 사흘 동안 폭탄을 맞았다. 친절했던 우리 팀 사수 베스나는 도끼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고, 다른 동료들은 말도 아니라며 곱지 않은 말과 시선을보탰다.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내 계약은 아침 6시부터 오후 2시 반인데. 그런데 이 업계의 룰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까지가 정석(8시간 근무+1시간휴식)이라는 것. 아침과 점심, 두 차례 30분 간의 휴식 시간은 법적 근무 조건이고.
칸티네 신문 공고까지 보여줘도 아니라는데 어쩌나. 본사 사무실은 멀고 동료들은 가까웠다. 독일인 총책임자와 매니저에게는직접 구두로, 본사 담당자에게는 전화로 문의해 본들 뭐하나. 외국인동료들과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하는 건 난데.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이런 문제에 '합리'란 없다. 그야말로 '기분'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너만 특혜를 받느냐, 너의 계약 조건 같은 건 됐고, 그런 분위기였다. 독일어 수업 때문에 화/목 이틀은 30분 일찍 출근과 30분 일찍 퇴근, 나머지 사흘은 3시까지 근무하는 걸로 최종 합의를 보았다. 그럼에도 냉랭했다.이런 게 총체적 난국이라는 걸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그렇다.동료들의 마음도 이해되었다. 그러나나 역시 억울하고 괴로웠다.
다리만 건너면 도이치 뮤지엄! 내가 좋아하는 근무 환경 중 하나다.
우리 칸티네는 외주 업체다. 한 마디로 수익 창출이 목표다. 당연히 일의 강도가 세다. 내가 일하는 칸티네 근무조는 세 파트. 조리팀, 주방보조/서비스팀, 설거지팀. 조리팀은 남자만 5명. 칸티네 운영 총책임자가 이 팀에서 일한다. 동료들이두려워하는 존재다. 거구에 말이 없다. 그러면 무섭다. 내가 일하는 주방보조/서비스팀은 총 6명. 이태리 총각 1명과 18년을 한결같이 캐시어를 전담하는 친절한 다다 할머니. 그리고 세 명의 여자분들이 있다. 설거지팀은 총 5명. 이 팀엔 할아버지 한 분과 유일한 아시아 사람인 베트남 여자 직원 뇽이 있다.설거지팀 크리스티나 아주머니도 친절하시다. 초반엔 그런 사람 한두 명만 있으면 버틴다.
첫날 이후 사흘 동안 출근 때마다 프로메테우스를 생각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독수리의 출현.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 매일 반복되는 고통을 어떻게 견뎠을까. 둘째 날과 셋째 날. 말들은 총알처럼 날아다니고, 친절한 설명이 어딨나, 조금만 버벅거려도 소리를 지르는게일상인 현장. 울지도 못하고 죽을 맛이었다. 한국인이라고 밝히지만 않았어도 때려치웠을 텐데. 넷째 날 아침. 새벽 다섯 시 삼십 오분 우반을 내려서 새벽길을 걸으며 불현듯 생각했다. 에브리데이 뉴데이. 기쁨도 고통도 에브리데이 뉴데이. 전날처럼 주눅들지 않고 시작부터 적극적인 모습으로 마지막 주방 바닥 청소까지 동참했다. 동료들에게 웃는얼굴로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도 발걸음도 한결 밝고 가벼웠다. 나는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