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성실하게 일찍 출근했더니 동료들의 태도와 눈빛이 많이 누그러졌다. 동료들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칸티네에서 배운 건 신뢰와 연대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
유럽 특허청과 독일 특허청 사이의 깃발들. 뒷쪽 건물이 독일 특허청이다. 내가 일하는 칸티네는 맨 꼭대기층인 10층!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토요일. 늦잠을 안 잤다. 아니 못 잤다. 토요일에도 평소대로 새벽 4시 반에 눈이 떠졌다. 일요일에는 다행히도 조금 더 잤다. 새벽 6시까지. 습관의 힘이란 무섭다. 지난주 내내 새벽 5시 반에 출근을 했던 탓이다. 일은 오후 3시까지 했다. 계약 조건보다 한 시간을 더 근무한 셈이지만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네 시 반에 아이의 간식 도시락을 싸고, 다섯 시 전에 우반역으로 달려 나갔다.
새벽에 출근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4시 55분(버스). 5시(우반). 아니면 걸어서. 4시 55분 버스는 한 번도 못 탔다. 5시 우반을 탔을 때는 놀랐다. 그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니. 두 번은 걸어서 갔다. 5시 우반을 놓치면 다른 방법이 없기때문이다. 지난주 날씨는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가로등도 밝았다. 휴대폰을 근무복 주머니에 넣고 일한 후 헬스 앱을 확인하니하루에 걸음수가 1만 5 천보가 넘었다.이건 좋은 징조다.
새벽 5시 반에 출근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일도 배우고 동료들의 마음도 얻기 위해서였다. 우리 팀5명중 베스나와 세라피노가그시간에 출근한다. 지난주부터우리 셋은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다른 동료들과 같이 퇴근한다. 첫날에 계약서대로 30분 빨리 퇴근했다가 그 주 내내 냉대를 받았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한 주를 성실하게 일찍 출근했더니 동료들의 태도와 눈빛이 많이 누그러졌다.그들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칸티네에서 배운 건 신뢰와 연대와 동료애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
칸티네에 출근 후 두 번째 맞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새벽에 잠이 깨어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창밖은 캄캄하고 집안은 고요했다. 남편과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따뜻한 침대에서 머무는 시간이 얼마만인가. 칸티네에서 얼마나 일할 지는 모르지만 이런 것이 칸티네 일이 안겨준 선물이다. 일요일 하루가 더 남은 토요일 아침이라니! 부산을 떨며 아침 식사를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주말 아침은 남편이 신선한 빵과 커피를 사 오기 때문이다. 토요일 아침 9시에 가족과 아침을 먹는 것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오전 10시. 아이를 한글학교에 데리고 가는 일도 남편의 몫이었다. 나에겐 집안일이 밀려있고, 남편은 토요일도 사무실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쉬는 일요일엔 레겐스부르크의 새어머니가 뮌헨으로 오셔서 함께 렌바흐 뮤지엄을 보고 가셨다. 두 번째 일요일엔 양아버지의 92세 생신이었다. 슈탄베르크로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의 티타임까지 마치고 돌아왔다. 일요일에 일을 안 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토요일이라고 아무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칸티네에 2주를 다녔건만 일을 다 익히지 못했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였다. 큰 밑그림 정도만 잡았다. 한 달쯤 지나면 다 알게 될까. 예를 들면 아침 7시까지 끝내야 하는 60개 정도의 샌드위치 빵 종류는 7가지. 속에 끼워 넣는 각각의 내용물이 아직도 헷갈린다. 100개가넘는 브레첼과 크라상과 브리오쉬를 오븐에서 굽는 법도 익혀야 한다. 빵과 브레첼 자르기는 익숙해졌지만 새벽 출근은 계속될것이다. 주 2회 독일어 수업은 어떡하냐고? 30분 늦게 간다. 3주도 반을 지나가고 있으니 토요일이 다가오는 소리도 들릴 법하다. 벌써부터 토요일이 기다려진다. 나는 토요일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