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하는 엄마에게 아이가 꿈을 물었다
아이가 열한 살이었을 때 2
내 꿈은 바뀌었다. 항암 부작용을 잘 이겨내기. 항암 과정이 상상이 안되지만 모른 채로 부딪히고 견뎌보기로 한다. 이게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전술은 없음.
작년 가을이었다. 로젠 가르텐에 체리만 한 사과가 달릴 때였다. 아이가 또다시 지난날 내 꿈이 뭐였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그게 왜 궁금할까. 자신의 꿈이 궁금하니까 묻겠지. 자꾸 물으니 나 역시 내 꿈이 뭐였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가수라고 답했다. 요새는 아이돌이 힙하니까 진짜야? 하며 눈을 빛낼 줄 알았다. 반응은 시큰둥했다. 애들 입맛에 맞추기 어려운 게 요리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때는 <범 내려온다>라는 노래도 <싱어게인>에 대해서도 모를 때였다. 지금은 <유명가수전>의 열렬팬이 되었지만.
지금은 아이도 짐작이 되는지 더 이상 물어주지 않는다. 내 꿈은 바뀌었다. 항암 부작용을 잘 이겨내기. 항암 과정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 일상이 어떻게 바뀔지, 산책은 갈 수 있을지, 음식은? 잠은? 화장실은? 구토는? 항암에 대해서는 검색을 하지 않았다. 안다고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아이 낳는 것과 같지 않을까.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항암이 그럴 지도. 개인차도 있겠지. 체력이 좋으면 도움도 되겠지. 모른 채로 부딪히고 견뎌보기로 한다. 이게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전술은 없음.
아이: 엄마는 꿈이 뭐였어? 꿈이 얼마나 많았어?
나: 엄마는 가수가 되고 싶었어.
아이: 뭐야, 완전 심심하네 꿈이.
나: 너는 꿈이 뭔데?
아이: 안 말해 줘. 왜 말해? 싫다!
나: 너무 했다. 진짜.
아이: 엄마, 애기처럼 그러지 마.
나: 니 꿈은 화가 아니었어?
아이: 누가 화가가 되고 싶대? 그건 애기들이나 되고 싶어 하는 거지!
나: (헐!) 그럼, 언니야들 꿈은 뭔데? 뭐가 되고 싶은데?
아이: 요즘엔 꿈이 많으면 안 돼. 많아도 하나만 있어야 된다고.
나: 그래? 그래서 네 꿈은 뭐야? 뭐가 되고 싶은데?
아이: 몰라. 꿈은 얘기하는 거 아니야!!!
나: (...!!!)
산책을 나갔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로젠 가르텐의 목련은 핀 지가 언제인데 질 줄을 모르나. 이월에도 보았다. 목련꽃 봉오리. 오월에도 그대로인 건 목련 탓이 아니다. 사월이 추워도 너무 추웠기 때문. 얼어붙은 마음이 여태 녹지 못한 건 네 탓이 아니다, 목련이여. 산책을 다녀와서 침대로 직행했다. 맞바람을 맞으며 걷는 일이 그리 고된 일인지 몰랐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바람에도 몸살을 할 수 있구나.
주치의에게 다녀왔다. 복부 초음파 검사를 했다. 복부는 양호함. 전이 때문에 가슴이 좀 아프긴 해도 참을 만하다 했더니 참지 말란다. 통증을 참을 필요는 없다고. 언제라도 말하면 진통제를 처방해 주겠다고. 그 말을 듣자 안심이 되었다. 남편이 원했던 꿈의 항암이라 불리는 면역요법은 못 할 것 같다. 뮌헨에는 하는 데가 없고 하이델베르크까지 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전이가 빠르게 진행되기도 하고 뮌헨에서 하는 게 편리하기도 해서. 남편도 일을 해야 하고, 아이도 학교가 있고, 무엇보다도 집에서 다닐 수 있으니까. 주사위는 던져졌고, 결과는 모 아니면 도. 나와라 모!
풀밭 위엔 꽃잎들. 로젠 가르텐의 오솔길을 따라 왼쪽은 목련 꽃밭, 오른쪽은 사과 꽃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