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는 언제 피려나

뮌헨의 여름방학

by 뮌헨의 마리


팔월부터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독일의 여름 방학은 6주가 넘는다. 이번 방학에도 목표는 있다. 아이와 영어책과 한글책 소리 내어 읽기. 첫 주는 성공적. 해바라기도 피고!


칠월에 사서 팔월에 꽃을 피운 해바라기(위). 허브와 라벤더(아래).



해바라기가 보름 만에 꽃을 피웠다. 칠월 중순 림프 마사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서 꽃이 피기만을 기다렸다. 처음 살 때는 꽃봉오리가 네 개였는데 그 사이 열 개가 되었다. 우리발코니가 동향이라 해가 충분하지 않아서 꽃이 늦는 건지 걱정도 해가면서. 해바라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그 밝은 노란색 때문.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팔월에 꽃봉오리가 후 다른 봉오리들도 앞다투어 피고 있다. 기다리는 것이 답일 때가 있다. 비가 많이 와서 꽃도 못 보고 여름이 가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기우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나 보다. 내 일만 잘하면 될 텐데. 꽃도 다 계획이 있을 텐데. 화분의 붉은빛에도 지지 않는 강렬함. 매일 아침 보고 또 보아도 기분 좋은 해바라기.


바질만 키우던 언니가 페퍼민트와 파슬리 화분을 사 왔다. 페퍼먼트는 줄기와 잎을 따서 뜨거운 차로 마시고, 파슬리는 스파게티와 파스타를 할 때 듬뿍 넣을 생각이다. 이상하게도 파슬리가 들어가지 않은 파스타는 2% 부족한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음식도 각종 양념이 풍미를 살리듯 다른 나라 음식에도 양념의 공식이 따로 있는 듯. 공식은 지키라고 있는 거겠지. 수학이든 레시피든. 라벤더 화분 더 샀다. 보랏빛꽃을 보라색 화분에 담으니 더욱 예쁘다. 벌들도 얼마나 모여드는지. 수시로 부엌으로 들어와 우리 언니를 놀라게 하는 것만 빼면 괜찮다. 항아리에 키우던 풍성한 라벤더는 어느지고. 빛바랜 꽃과 줄기를 잘라 푸른 병에 담으니 색도 향도 버릴 게 없는 여름은 라벤더의 계절.



아이가 한글학교에서 쓴 시와 그림(위). 김나지움에서 독일어와 영어 시간에 발표한 내용(아래).



칠월 말 한글학교는 독일 학교들보다 한 주 먼저 방학을 했다. 6월부터 두 달쯤 대면 수업을 한 것도 반가웠다. 얼마 만의 등교인지 기억도 안 났다. 작년 봄에 코로나와 함께 담임을 하셨던 샘은 1년 내내 온라인 수업만 하시다 다른 반으로 가시고 아이 반에는 새 담임샘이 오셨다. 작년 가을 마지막 수업 때 한글학교에서 한글날 기념으로 시 짓기와 그림 그리기가 있었다. 그때 쓴 시와 그림도 돌려받았다. 아이는 자라기 바빠서 돌아서면 잊을 테니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엄마의 일. 작년 가을 김나지움 첫 해에 독일어 수업과 영어 수업에 했던 발표도 찍어놓는다. 학년이 올라가면 모든 발표도 파워 포인트로 바뀔 것이다. 언젠가는 모든 것들도 한 장의 추억으로 남겠지.


며칠 전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대단해! 뭐가? 저녁에 욕실에서 가발을 벗던 내가 아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머리가 다 안 빠졌잖아! 아직도 머리가 남아 있으니까. 아이가 손으로 짧은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했다. 그렇다. 가발을 벗으면 아직 머리가 촘촘하게 남아 있다. 이건 무슨 경우인지. 까까머리 중학생처럼 짧게 자른 내 머리를 가장 좋아하는 분은 힐더가드 어머니시다. 귀엽다고. 진심으로! 지난번 어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 내 머리를 몇 번이나 쓰다듬으시며 가발을 벗고 다니라고 바람까지 넣으셨다. 이런 머리가 유행 아니냐며. 아니 언제부터요? 어디서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건만. 난 엄마가 아프다는 걸 자꾸 까먹어. 엄마, 빨리 나아! 아이의 말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독일로 온 이후로 울지 않는다. 울 일이 없어서. 엄마가 없을 때 아이를 버티게 한 세 마리 쥐들까지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세 마리 쥐와 피구어(위/아래). 내가 좋아하는 낙타 인형들(가운데).



팔월부터 시작한 아이의 방학. 독일의 여름 방학은 6주가 넘는다. 개학은 구월 중순(7/29~9/14). 놀라운 건 방학 종업식이 금요일이 아니고 목요일, 개학도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이란 것! 독일은 겨울 방학이 2주 남짓으로 짧아서 여름 방학이 긴 편이다. 올여름은 내가 항암 중이기도 하고, 유럽에도 코로나 변이가 확산 추세라 집에서 지낼 확률이 높다. 힐더가드 어머니가 9월 초에 초대하신 포르투갈 가족 여행은 애초에 나와 언니가 빠지고 어쩌면 아이도 못 갈 수 있다. 코로나 상황에 따라 휴가 후에 아이가 2주 격리가 되면 학교를 못 갈 수 있기 때문에. 내 계획은 팔월 중순에 카타리나 어머니가 조용한 호숫가로 휴가를 떠나실 때 어머니를 방문해서 우리도 같이 휴가 기분을 내는 것.


이번 방학에도 목표는 있다. 아이와 영어책 소리 내어 읽기.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4년 제인 독일 초등학교는 3학년 때 영어를 시작한다. 한국과 비교하면 유치원 수준. 기초 단어만 배우는 정도다. 김나지움에 들어가는 5학년 때 본격적인 영어 수업이 시작되는데 1년 동안 배우는 어휘수가 많다. 영어책은 한국에서 들고 온 낮은 레벨의 읽기 교재로 하루에 1권. 조금 연습한 뒤 재미있는 단행본으로 넘어갈 생각이다. 한글책도 소리 내서 읽는다. 이건 엄마와 같이. 시작은 동기부여가 중요하니 첫 문장만 아이가 읽고 나머지는 엄마가 읽어주기로 했다. 매일 한자도 쓴다. 어릴 때 한국에서 배운 한자를 잊어버리면 억울하니까. 다행히 다 까먹지는 않았다. 첫 주는 성공적. 해바라기도 피고!



사촌 동생들이 보내준 한글책(위). 영어책들과 한자 쓰기(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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