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 했다

아이가 열한 살이었을 때

by 뮌헨의 마리


지금은 열두 살이 된 아이가 열한 살일 때 물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다시 태어나면 자기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지금 사는 것과 다시 똑같이 살까? 자기는 그것이 궁금하다고. 엄마는 안 궁금하냐고.



오월의 둘째 날. 뮌헨의 로젠 가르텐은 곧 라일락이 접수할 듯하다.



2020년 9월. 작년 가을이었다. 아이가 물었다. 죽으면 다시 태어나냐고. 죽으면 어떤 기분일지, 죽고 나면 어떻게 될지가 궁금하다고. 내가 암이란 걸 알기 두 달 전이었다. 아이의 질문이 뜬금없기도 했지만 신기하기도 해서 노트 폰에 받아 적기 시작했다. 아이는 내가 적는 속도보다 빠르게 질문을 쏟아냈고, 나는 그 속도를 늦춰볼 요량으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열한 살 아이의 머릿속을 탐험하는 기분은 묘하고도 즐거웠다. 사람은 저마다 개별체라는 것. 내가 낳은 아이지만 나와는 다르다는 것. 부모과 자식, 어른과 아이라는 관계를 떠나 아이는 독자적인 인격체라는 것. 어떻게 저런 게 궁금할 수 있지. 놀라웠다. 아이는 잊었겠지만, 나는 그날의 대화를 작가의 서랍 속에 소중히 간직해 두었다. 그때만 해도 이런 투병의 날이 올 거라는 건 꿈에도 몰랐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건 나쁘지 않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가야 하고, 삶이란 누군가를 만나거나 떠나보내는 일의 연속 아닌가. 매 순간 죽음에 대해 관조할 수 있다면 두려움을 떨칠 수도 있겠다. 죽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혼자 가야 한다는 것과 누군가를 남기고 가야 한다는 두려움.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랑을 받기만 하고 되돌려주지 못한 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모든 두려움, 두려움, 두려움들.






아이: 죽으면 다시 태어날까? 죽으면 어떤 기분일까?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자기 영혼은 모든 걸 다 볼까? 마음대로 날아갈 수 있을까? 죽고 다시 태어나면 자기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지금 사는 것과 다시 똑같이 살까? 죽고 나서 사람으로 동물로 식물로 다시 태어날까? 아니면 그냥 없어지는 걸까? 내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내가 없다는 게 상상이 안 돼! 그럼 세상은 어떻게 계속될까? 엄마는 궁금하지 않아? 자기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될지. 그리고 내 물건은 어떻게 되지? 안 중요하지만 그래도 궁금해! 태우나? 엄마 생각은 어때?

나: 안 생각해 봤는데.

왜?

바빠서.

뭐야! 그럼 밤에 생각해 보면 되지.

밤에는 내일 할 일, 아침엔 오늘 할 일 생각하느라.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다고!

그런 게 안 중요하면 뭐가 중요해?

그건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그런데 그런 게 언제부터 궁금했어?

평생! 생각을 할 수 있을 때부터.

엄마는 거의 죽을 뻔했던 적도 있어.

그게 언제였어? 뭐하다가?

... 근데, 그게 왜 궁금해?

? 물어보면 안 되냐?... 나랑 뭐 할래?

뭘?

그냥 아무거나.

엄마도 이제 생각해 봐야겠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언젠가 돌아가실지도 모르니까.

엄마 아빠랑 파파 아빠는 벌써 돌아가셨잖아. 엄마 아빠는 엄마랑 이모야가 태어나고 돌아가셨어? 아님 안 태어나고 돌아가셨어?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어.

슬펐겠다. '아빠'는 엄청 좋은데. 엄마의 엄마는 힘들었겠다. 할머니가 좀 슬펐겠네? 엄마랑 이모야 태어나고. 엄마는 언제 죽을 뻔했어?

갑자기 차 타고 가다가 숨이 안 쉬어졌어.

왜?

몰라. 그런데 무섭지는 않았어.

나도 그런 거 알아.

어떻게 알아?

나도 있어 봤으니까!

너도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어?

당연하지. 그런데 엄마는 내 엄만데 그런 걸 물어보냐. 너무 한 거 아냐?

그때 기분이 어땠어? 죽을 뻔했을 때.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고, 이상하게 조금 기분이 좋았고, 누가 도와줄까도 생각했고, 머리가 깨끗했어. 생각을 잘할 수 있었고, 괴롭지는 않고 조금 기분이 좋았어, 이상하게.

그게 언제였어?

비밀!

엄마는 말해줬는데..

언제인지는 안 말해줬잖아!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도 엄마가 태어나기 전에!

(헐!) 넌 이런 게 어떻게 궁금했어? 신기하다.

그게 왜 신기해?

그래서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뭐가?

나: 죽으면 어떻게 될 거 같은데?

아이: 몰라. 그걸 어떻게 알아!!!


(심오한 주제는 아이 맘대로 끝났다..)






이른 아침에 톡을 받았다. 한국에 갔을 때 나를 보자마자 너무 기쁜 나머지 인정사정없이 끌어안던 친구였다. 누군가를 세게 안으면 아플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너무 짧은 만남이어서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하고 왔다. 그 친구가 말했다. 자기 친구 하나도 암이 뼈로 전이된 후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고. 그러니 너무 걱정 말라고. 이 말을 들으면 남편이 좋아할 것 같아서 그날 아침 CT를 찍으러 병원에 가는 길에 들려주었는데 좋았는지는 모르겠다.


그 친구에게 또다른 놀라운 소식도 들었다. 얼마 전 대관령에 폭설이 내렸다는 말. 22년 만에 내린 오월의 눈이었다고. 아마도 나의 쾌유를 비는 폭설이 아니었겠냐고. 아니라면 펑펑 내리는 눈이 그렇게 예쁠 리가 있었겠냐고. 먹고, 잘 쉬고, 힘든 시간도 있겠지만 잘 이겨낼 거라고. 언제나처럼 나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안다. 많은 분들의 마음이 또한 그녀와 같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운 내겠다.


주말에는 산책을 많이 못했다. 항암을 위한 카테터 수술 때문이었는지 날씨가 추워서였는지 몸살이 날 듯 몸이 무거웠다. 억지로 일어나 언니와 아이와 짧은 산책을 할 때였다. 이자르 강변 로젠 가르텐에서 보았다. 보랏빛 라일락 꽃망울들. 독일어로는 플리더 Flieder라고 부른다. 이번에 찾아본 꽃말은 첫사랑. 그리고 젊은 날의 추억. 그중에는 이런 꽃말도 있었다. 친구의 사랑. 흰 라일락은 아름다운 맹세. 오월에 라일락을 볼 때마다 생각하겠다. 친구의 사랑을. 건강한 모습으로 내년 여름에 한국에 가겠노라던 아름다운 맹세도.



로젠 가르텐에 피어나는 오월의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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