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여, 지는 해를 잡을 수 없듯 지난 시간을 돌이킬 수 없구나. 장미가 눈물을 삼키고 고개를 떨구며 어린 왕자의 등을 떠밀 때 가을도 왔다.
가을의 장미.
9월부터 독일어 동화책을 필사 중이다.10권의 단행본 그림책을 필사한 후 청소년 권장용 <어린 왕자>를 필사 중이다.당연한 말이지만 원작이 프랑스어라 독일어 번역본도 여러 권인데 그것이더흥미롭다. 작년부터 <어린 왕자>를내게 적극 권장한 사람은 시누이 바바라였다. (본인은 최근 이태리어 <어린 왕자>를 샀다고 수줍게 고백함.) 내 책은 주니어 용이라 독일어 문장이 길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 큰소리로 읽기를병행하고 있다. 현재 진도는 절반쯤.아직 지구에 도착하지는 않았다.
어린 왕자를 옮겨적는데 장미의 마음이 내게로 왔다. 장미는 알았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의 의미를, 자신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으며, 그 대가가 얼마나 클 지도. 사랑 앞에서 자존심을내세울지 말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서. 장미는 알고 있었다. 어린 왕자가 사랑을, 자신을 이해하려면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떠나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사랑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무정한어린 왕자여!
장미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그리움을 속으로만삭히는 법도익혔다. 그를 다시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걸린다는 것도 각오했다. 아니면 영영 못 만날 지도. 한번 떠난 사람이 돌아온 적이 있던가. 어린 왕자는 한동안장미를잊을 것이다. 수많은 곳을 떠돌고새로운 세상을 만나고골짜기를 지나고절벽을 건너서 노을을 마주할때장미를 떠올릴지도 모른다.지는 해를 붙잡을 수 없듯 지난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장미가눈물을 삼키고 고개를 돌리며어린 왕자의 등을 떠밀 때 가을도 왔다.
어린 왕자 앞에서무너진 마음을 보이지 않으려던 장미의 품격은박수를받아 마땅하다.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그녀의 결단은 문학적이다. 모든 작별은 영원한 이별로 귀결되기도 하니까.모든 비극적인 이별은 아름다움을 담보로 하니까. 마음 놓고 흘리지 못한눈물을본문 속 장미의 언어로소개한다.다시 돌아온 가을을시월의 장미에게 바치며.
독일어 <어린 왕자>(위) 아이가 그린 장미와 에코백(아래 좌/우)
》Ich war ja so blöd.《, sagte sie schließlich. 》Entschuldige bitte. Geh und versuche dein Glück.《
"내가 너무 나빴어." 마침내 장미가 말했다. "미안해. 이제 떠나, 너의 행복을 찾아서."
》Weißt du《, sagt sie, 》ich liebe dich nämlich. Meine Schuld, dass du nichts davon gemerkt hast. Aber egal. Du warst ja genauso blöd wie ich. Nur zu, versuche dein Glück... Die Vase brauche ich nicht mehr...《
"그거 알아?" 그녀가 말했다. "난 널 사랑했어. 내 탓이야, 네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거. 그게 무슨 소용이람. 너도 나만큼이나 나빴어. 이젠 너의 행복을 찾아 떠나. 그 꽃병은 필요 없어..."
》Mit ein oder zwei Raupen werde ich schon vertig werden. Die braucht es, wenn ich mich mit den Schmetterlingen unterhalten will. Darauf freue ich mich. Wer soll mich den sonst besuchen? Du wirst ja über alle Bergen sein. Und vor den großen Biestern fürchte ich mich nicht. Ich habe ja selber Krallen.《
"애벌레 한두 마리면 충분해. 내가 나비들과 얘길 나누고 싶을 때 말이야. 그 정도면나쁘지않을 거야.그들 말고 누가 날 찾아오겠어? 너는 세상의 모든 산을 오르고 있을 텐데. 맹수가 나타나도 난 무섭지 않아. 나도 덤빌수 있거든."
》Was trödelst du? Das ist langweilig. Du hast beschlossen abzureisen. Nun geh schon!《
Sie wollte nicht, dass der kleine Prinz sie weinen sah; denn sie war eine sehr stolze Blume.
"뭘 망설이는 거야? 구질한 건 질색이야. 넌 이미 떠나기로 마음먹었잖아.그러니 빨리 가버리라구!" 그녀는 어린 왕자에게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존심이 강한 장미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