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향연’은 사랑의 신 에로스에 관한 대화록이다. 사실 온전히 집중해서 책을 읽을 때에 비해서 필사를 하면서 책을 읽는 것이 집중력이 더욱 저하되는 것 같고, 내용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책을 필사하면서 사람 사이의 사랑 그리고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아래는 습작의 일환으로 책 전체를 필사한 플라톤의 향연이다.
그러나 오이아그로스의 아들 오르페우스에게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하데스로부터 되돌아가게 했는데, 그가 찾으러 온 아내의 그림자만 보여 주고 실물은 내어 주지 않았지요. 이건 그가 류트를 연주하는 자이기 때문에 유약하였고 또 알케스티스처럼 자신의 사랑을 위하여 죽을 용기가 없었고 그저 살아 있으면서 하데스에 이르려고 한다고 신들은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이 때문에 신들은 그를 벌하여 여자들의 손에 죽게 했지요.이와 반대로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에게는 영예를 주어 축복받은 자들의 섬으로 보냈지요.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기를 그가 헥토오르를 죽이면 그도 죽이려니와 죽이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와 장수하리라고 했음에도 불고하고 오히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파트로클로스를 도와주러 갔고, 파트로클로스가 죽가 복수하였으며, 그 사랑하는 사람의 뒤를 따라 최후를 마칠 것을 용감히 선택한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도 깊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 까닭에 신들도 그를 지극히 우러러 보아 특별히 영광스럽게 해 준 거예요. 그런데 아이스퀼로스가 아킬레우스를 파트로클로스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엉뚱한 이야기이지요. 사실 그는 수염도 없는데다가 호메로스가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나이가 훨씬 아래였으니까요. 어떻든 신들은 사랑의 덕을 가장 귀하게 여기지만, 사랑하는자가 그 소년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에게 애정을 가질 때 더욱 찬탄하고 존경하며 은혜를 내려주는 거지요. 워낙 사랑하는 자는 신에게서 힘을 얻으므로 사랑받는 소년보다 더 신적이니까요. 그런 까닭에 신들은 그를 알케스티스보다도 더 영광스럽게 해 주고 축복받은 자들의 섬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이상의 여러 이유로, 나는 에로스가 신들 가운데 가장 나이 많고 가장 존귀하며 또 생전과 사후를 통틀어 사람들에게 덕과 행복을 마련해 주는 가장 유력한 존재라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파이드로스는 이와 같이 말했다네. 파이드로스 다음에 몇 사람이 이야기했지만, 거기 대해서는 그가 잘 기억하고 있지 않았네. 그래서 그는 그걸 그냥 넘겨 버리고 파우사니아스의 연설을 보고해 주었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는군. ”오오 파이드로스, 그렇게 덮어놓고 에로스를 한 묶음에 다루어서 찬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만일 오직 하나의 에로스 밖에 없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그러나 사실은 오직 하나 있는 게 아니지요. 또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그 중 어느 것을 찬미할 것인지 먼저 정하는 것이 옳아요. 그러니 나는 이것부터 시정해 보려 하오. 그래서 먼저 어느 에로스를 찬미해야 할 것인지 말하고, 그 다음에 그 신에 합당하게 찬미하려 하오. 에로스 없는 아프로디테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만일 아프로디테가 하나라면 에로스도 하나일 거예요. 그러나 사실은 그 여신이 둘 있으니까 에로스도 둘 있어야만 하지요.어떻게 이 여신이 둘 있는게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중에서 나이가 많은 쪽은 우라노스의 딸로서 어머니가 없으며 우리가 우라니아라고 부르는 여신이고, 나이가 어린 쪽은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로서,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판데모스라 부르는 여신이지요. 그러므로 에로스에 있어서도, 이 후자와 협력하는 것은 판데모스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우라니오스라 불러야만 할 거예요. 물론 우리는 모든 신을 찬미해야하겠지만, 그들의 본성을 분간하지 않고서는 찬미고 뭐고 없으므로 먼저 이 두 신의 성격을 구별해야 합니다. 무릇 모든 행위는 그 자체에서는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추한 것도 아니지요. 가령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것, 즉 술을 마시는 것이나 노래하는 것이나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어떻게 행해지는가에 따라 아름다운 것이 되기도 하고 추한 것이 되기도 하지요. 즉 아름답고 바르게 행해지면 아름다운 것이고, 바르게 행해지지 않으면 추한 것이죠. 사랑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에로스가 다 아름답고 찬미할 만한 것이 아니고, 오직 올바르고 아름다운 사랑을 고무하는 에로스만이 아름답고 찬미할 만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판데모스 아프로디테에 속하는 에로스는 그야말로 정말 저속하고 또 제멋대로지요. 그것을 바로 저속한 사람들의 사랑이에요. 이런 사람들은 첫째로 소년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또한 그에 못지않게 여자도 사랑하지요. 그들은 영혼보다 육체를 사랑하지요. 그리고 그 다음엔 될 수 있는 대로 어리석은 사람을 택하지요. 이건 그들이 그저 목적의 달성만을 원하고, 그것이 훌륭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들은 좋은 일이건 좋지 않은 일이건 무턱대고 마구 행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이 에로스가 다른 아프로디테보다 훨씬 더 나이가 어리고 그 출생에 여성과 남성이 다같이 관계한 아프로디테로 말미암은 때문이지요.한편 우라니아 아프로디테에 속하는 에로스는 첫째로 여성과는 관계하지 않고 오직 남성하고 관계하는 것입니다.-소년에 대한 사랑은 바로 이런것이지요-그리고 이 여신은 나이가 위이고 방종에 흐르는 법이 없습니다. 이 에로스의 영기를 받은 사람들은 남성에게로 향하지요. 이 사람들은 본래 더욱 용맹하고 더욱 지력이 뛰어난 자를 좋아하니까요. 소년애에 있어서도, 우리는 이 순수하고 소박한 에로스에 의하여 움직여져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식별할 수 있지요. 그들은 철없는 소년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이성을 가지기 시작해야 사랑하게 되는데,수염이 나기 시작할 즈음이지요. 이때쯤부터 소년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사람은 일생을 통하여 항상 그와 함께 있으며 또 함께 생활할 각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린소년을 아직 철들지 않을 때에 얻었다가 그 다음에 그 소년을 속이고 조롱하고 나중엔 다른 소년한테로 가는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 원래는 철없는 소년들에 대한 사랑을 금하는 법률이 있어야만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것에 대해서 많은 정력을 소비한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니까요. 어린 소년,은 그 영혼이나 육체가 훌륭하게 될 것인지 신통치 못하게 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들은 자진해서 이런 법률을 스스로에게 제정해 놓고 지키는 것입니다. 한편 이 법률은 야비한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강제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들이 자유로운 신분의 부인들과 사랑하지 못하도록 될 수 있는 대로 우리가 이들을 강제하듯이 말입니다. 사실 이들 떄문에 사랑 전체를 욕하고 사랑하는 자를 기쁘게 하는 것은 추한 일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우둔함과 부정함을 보고 공격하느라고 하는 거지요. 무릇 이 세상에서 법에 따라 절도 있게 한 일치고 공연히 비난받는 일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사랑에 관한 관습이 간결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이해하기가 아주 쉬워요. 그러나 이 아테나이에서는 복잡해서 자못 아리송해요. 엘리스나 라케다이아몬이나 보이오티아나 그밖에 주민의 구변이 좋지 못한 곳에서는 그저 사랑하는 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 정해져 있고, 젊은이건 늙은이건 아무도 이것을 흉측하다고 하지 않아요. 내 생각엔, 그들은 변론을 잘 하지 못하니까 골치 아프게 젊은이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나 이오니아를 비롯하여 야만인들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런 일이 흉측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저 야만인들은 전체 정치의 입장에서 지혜를 사랑하거나 체육을 애호하는 것과 한가지로 이런일도 흉측하다고 합니다. 내 생각엔 피지배 민족 가운데서 큰 뜻을 품은 자가 나타나거나 강한 우정과 단결을 가지게 되는 일이 없는 것은 그 통치자들에게는 유리한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일으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이 가장 힘차게 고취하는 거지요. 우리나아의 전제 군주들도 이것을 실지로 경험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리스토게이톤의 사랑과 하르모디오스의 굳은 우정은 마침내 저들의 주권을 뒤엎어 버렸으니까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흉측한 일이라고 규정된 곳에서는, 그런 법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좋지 못한 습성, 즉 통치자들의 권세욕과 피치자의 비겁한 성품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지요. 한편 그것이 그저 덮어놓고 좋다고 여겨지는 곳에서는 그런 법률을 제정한 사람들의 정신이 게을러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아에서는 좋은 법률과 관습이 행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앞서 말한 것처럼 그걸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가령, 드러내놓고 사랑하는 것이 몰래 사랑하는 것보다 나으며, 또 남보다 좀 못생겨도 가장 고귀하고 가장 우수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특히 좋은 일이라고들 말하는 것을 잘 생각해 보세요. 또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자를 얼마나 성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세요. 또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자를 얼마나 성원하고 있는가 생각해보세요. 그는 결코 추악한 일을 한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리고 그가 성공하면 아름다운 일로 여겨지고, 실패하면 못난 짓으로 여겨지지요. 또 관습은 사랑하는 자가 성공하기 위해서 한 일이라면, 예사롭지 않은 행위도 허용하여 심지어 칭찬까지 받게 하고 있어요. 만일 누가 그런 행위를 사랑 이외의 다른 동기에서 한다면 맹렬한 비난을 받을 거예요. 가령 어떤 사람한테서 돈을 얻거나 감투를 쓰거나 권력을 얻으려는 욕망에서 마치 사랑하는 자가 그 소년에게 하듯 애걸하고 간구하고 맹세하며, 상대방의 집 문간에서 자며, 또 어떤 노예도 하려 하지 않을 천한 일을 자진해서 하려 한다면, 친구나 적이 다같이 이런 행위를 못하게 할 거예요. 친구는 그런 행위를 부끄럽게 여겨 충고를 할 것이고, 적은 아부 근성과 야비한 태도를 욕할 거예요. 그러나 살아하는 자가 이런 행위를 할 때에는 오히려 세인의 호감을 사며, 관습은 마치 그런 행위가 아주 아름다운 일인 양 아무 비난도 받지 않고 행할 수 있게 해주고 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상한 일은, 사람들의 말에 의하건대, 오직 사랑하는 자만이 그의 맹세를 깨뜨리고도 신들의 용서를 받는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사랑의 맹세는 도대체 맹세라 할 수 없는 거라고 말하고들 있는 거지요. 한편 그것이 그저 덮어놓고 좋다고 여겨지는 곳에서는 그런 법률을 제정한 사람들의 정신이 게을러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법률과 관습이 행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앞서 말한 것처럼 그걸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