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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Jun 21. 2021

큰 달에서 뛰놀기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니던 높은 동네, 상동


강원도 영월군은 산촌이다.


강원도를 세로로 가르는 백두대간의 서쪽 아래, 그러니까 영서지방의 밑자락에 가로로 길게 뻗어져 백두대간의 끝자락의 산이 촘촘히 그리고 높게 흩뿌려져 있다.


서울에서 살 때도 북한산 자락 끝에 살고 있지만, 산촌에 산다는 건 산을 바라보고 사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우선 어딜 가도 산이 다 보인다. 흔히 사람들은 영월에서 동강, 래프팅을 떠올리지만 동강이 영월 전체를 흐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산은 어느 면, 어느 읍을 가도 다 우뚝 솟았다.

또 산의 높이가 동쪽, ‘령’으로 올라갈수록 더 높아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영월에서 생활하다 보면 중고등학교 때 배운 한국지리 지식이 실제 눈앞에 펼쳐다. 산업과 지형, 기후와 생활, 이런 파트로 구성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곳에서 생활하며 오고 가는 동안 그 지식들이 실제로 구현된 걸 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우선 영월은 크게 세 생활권으로 나눌 수 있다. 주천면과 그 부근, 가운데의 영월읍과 부근 면들, 그리고 상동읍과 부근. 특히 오른쪽 상동으로 가면 한국지리와 세계지리, 사회경제 교과서의 실사판이다.


한반도의 오른쪽이 백두대간이기 때문에 영월군의 오른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진다. 특히 상동은 해발고도가 400m를 훌쩍 넘는다. 이 정도 높이면 고랭지 농업이 되기 때문에 도로변에서 ‘고랭지 배추절임 판매’라는 현수막을 종종 볼 수 있다. (고랭지 농업은 해발 400m부터 1000m 사이에서 시행되며, 서늘한 기후를 이용해 여름에도 겨울 작물 – 대표적으로 배추-을 재배할 수 있다, 고 수십 년 전에 배웠다. ) 강원도 하면 감자나 옥수수를 생각했는데, 이쪽을 지나며 창밖을 보면 푸릇푸릇한 배추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을 가기 위해 영월읍에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출발지 점보다 지대가 점점 높아지면서 귀가 멍멍해지는 게 느껴진다. 이 길은 계속 같은 풍경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어서 보통은 김삿갓면의 예밀을 지나 올라가는 길을 선택했는데, 올라가면서 바뀌는 창밖의 풍경 (농촌 평야에서 산촌, 쭉쭉 뻗은 숲으로 서서히 변하는데, 햇살의 정도에 따라 느낌이 180도 다르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이곳으로 틈만 나면 드라이브를 갔다.


원래 이곳은 전 세계적인 텅스텐 매장지다. 텅스텐은 단단하고 무거워 한자로는 중석이라고 한다. 지금 인구를 생각하면 왜 이곳이 면이 아니라 읍이었을까 싶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지나가던 개도 현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유한 탄광촌이었다.

(*이런 비유는 쇠락한 마을에서는 다 붙는 것 같다. 이 부근 탄광으로 유명했던 정선이나 태백.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조선소가 많던 경남 거제에서도 다 몇십 년 전까지 개들도 지폐를 물고 다니는 그런 곳이었다. 나도 잘 나가서 물어보고 싶다. 지폐!)


그런데 중국이 저가의 텅스텐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생산량은 급감했고 결국 폐광에 이르게 된다.


이곳을 처음 갔을 때 느낌은 ‘으스스하다’는 것이었다. 회색의 죽은 도시. 게다가 지대가 높아지면서 5월 말 대낮에도 살짝 서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서진 폐가들, 오래된 간판, 텅 빈 거리를 보면서 여긴 뭐가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마침 영월에서 출발할 때 간당간당했던 차의 기름이 바닥을 드러냈다.


내비게이션을 찍으니 주변에 주유소가 몇 개 보여서 우선 올라가 보자 하고 탄광 쪽으로 올라가는데 토요일 오후 세시였는데도 모든 것이 다 닫혀있었고 거리에는 산 그림자만 덮고 있었다.


설마 이러다가 여기서 보험사 불러야 하나, 뭐라도 좀 먹고 화장실도 가고 싶은데 편의점은커녕 열린 식당도 보이지 않았다.

도로에서 올라가는 곳곳에는 우뚝 솟은 산들이 검푸르게, 그리고 조금 위압적으로 서있었고 그 밑에는 철조망으로 잠긴 폐광이 있었다.

상동읍 시장거리를 지나 더 올라가다 보면 이 폐광의 흔적을 더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서 있으면 지하에서 나오는 바람이 나와 시원하다 못해 춥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광명 동굴에서 느껴지던 한기랑 비슷하지만 이 안에는 뭐가 있을지 모르니 살짝 소름이 돋으면서 오싹하기도 했다. 왜 만화 김전일을 보면 꼭 이런 외딴 산촌에서 잠긴 동굴이나 폐광 잔도에 몇십 년을 홀로 살거나 미라가 된 시체들.. 이런 것들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서 그런지 대낮에도 소름이 돋으면서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지막 남은 기름을 탈탈 털어서 마을을 찾아 조금 낮아진 지대의 주유소에 들어가 기름을 넣었다. (된장 마을이 있는 사거리의 왼쪽이었다. ) 그곳에서도 주인아주머니는 잠시 밭일을 하다가 우리를 보고는 저 멀리서 뛰어오셨다. 지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에게 이곳에 대해 여쭤보니 앞서 언급한 지리 교과서적인 상식과 거의 유사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 이곳이 영월에서 가장 잘 나가던 동네였는데, 폐광이 되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관리가 안되니 마을이 황폐해지고, 뭐 그렇다는 얘기였다. 강원도 이쪽에서는 군단위로는 영평정 순서였는데 요즘은 그것도 밀렸다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시대의 변화, 뭐 이런 거에 조금 마음이 짠하다가 그래도 다시 여긴 올 일이 없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와서 뭘 할 수 있을까, 할 것도 없고 이번처럼 기름이 또 떨어지면? 배도 고픈데 식당은 안 보이고 편의점 삼각김밥도 살 수 없었는데. 하면서 읍내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이곳을 다시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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