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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May 21. 2021

작은 달 상륙하기

영월 한달 살기-사전 조사/답사

영월로 행선지를 정한 것은 산이 많고, 조용한 곳.

혹시나 일 때문에 가야할 수도 있으니 자가용으로 세 시간 이내의 거리의 도시.


이걸 정한 건 뜬금없이 남쪽 끝자락, 통영이었다. 한창 벚꽃이 피기시작할 무렵인 3월, 통영의 풍화일주로를 달리다가 한적한 마을을 보고, 이런 작은 '마을'에 살아보자, 결심을 했다. 다만 서울이랑은 조금 가까워야겠지, 경기도를 제외하고 (리틀 포레스트를 위해) 산촌- 세 시간 이내. 


Long List:

정선, 태백, 영월, 평창, 삼척, 동해, 단양 (후에 알았다. 동해와 삼척은 산촌이 아니다. 나는 지리에 약하다.)


사실 BYC라고 불리는 봉화, 양양, 청송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지만 교통이나 다른 조건들이 너무 갑자기 변하면 힘들 것 같아서 제외. 당일치기가 가능한, 하지만 지금 사는 곳보다는 작은 규모의 곳들.


인스타로 한달 살기 해쉬태그로 검색해보니 제주나 거제, 통영, 경주, 남해처럼 대부분이 남쪽이거나 바닷가 근처였다. 인스타에서는 예쁜 에어비앤비가 많았고 이런 곳에 가려면 돈백은 줘야 겠지만 나는 이정도는 쓰고 싶지 않아서 애초에 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Option 1 (and the only one)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영월로 여름 휴가를 오곤 했다. 항상 8월 중순에 와도 으슬으슬 추웠던 기억이 있고,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모든 곳이  한적했고, 계속 길이 구불구불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20년 전이 다 되어 가는 일이니 지금이랑은 많이 다를 수도 있다. 고씨동굴이 관광화되기 전에 갔을 때는 안에서 박쥐를 보기도 했고, 칠흑같은 어둠이 무엇인지 영월에서 밤하늘을 보면서 처음으로 실감했다.


정선은 너무 강원랜드가 생각나서 왠지 피하고 싶었고, 평창은 일 때문에 몇 번 오간 적이 있어서 또 스킵. 그리고 어릴 적 추억이 남은 영월이 끌렸다.


대학교 다닐 때 1박 2일을 보고 영월에 놀러온 것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기고로 글을 썼던 게 포털 메인에 걸린 적이 있다. 인생 최초의 포털 메인 기사였다. 그 때문인지 영월에 가면 뭔가 다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도 같았다.


서울 연신내 집에 앉아 부동산을 검색하니 왠 임야, 토지 매매 거래 부동산만 나오고 내가 원하는 물건들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언론에 보도된 사례나 대관 사업이 있나 검색해보니 여성조선의 한 기자가 펜션에서 한달 살기를 하고 쓴 기사가 있었다. 밑에는 관련 부처 전화번호가 있었고, 한달 살기가 가능한 숙소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기사는 2019년이라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을테니 비슷하겠거니, 하고 숙소에 전화를 돌렸는데 대부분 올해는 코로나때문에 안한다, 그게 군청 지원사업이 끝나서 안한다 뭐 이런 대답이었다.


다시 그러면 이 사업을 주도한 군청 사이트에 들어가서 전화를 하는데 나는 처음 '귀농''귀촌' 관련 부서로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알려주신 것은 대부분이 귀농, 영농인 관련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일을 관둘 생각이 없고 몸쓰는 일은 젬병인데?


이렇게 관둬야 하나..싶다가 의지의 한국인 답게 나는 다시 네이버를 뒤졌고, 영월 한달살기, 영월 머물기 영월 살이, 영월 새댁 등등 수없이 많은 검색어로 영월 한달 살기를 찾았다.


팬질로 다져진 검색실력은 몇 블로그를 걸러낼 수 있었고, 영월에 한달 살이를 할 수 있는 에어비앤비- 그리고 이달엔 영월이라는 베이커리 카페 겸 에어비앤비, 여행 블로거가 영월 한달 살이를 하고 낸 책들도 찾았다.


그 글을 보면서 나의 영월 생활도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뭐 이런 걸 보다가 그 생활을 위해선 다시 집을 찾자 - 이 마음으로 서울 전셋집을 구할 때처럼 피터팬, 직방 같이 부동산 관련 서비스를 찾았다. 생각보다 매물이 많이 없었고 영월 달방으로 검색했더니 일용직 노동자들이 작업때 거주하는 '잠만 자는 방'이 대부분이라 일찍이 제외했다.


한 달짜리 집을 내주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한 달이 지나면 다시 또 청소를 해서 새로 세입자를 구해야 하고, 보증금 반환문제도 까다롭고. 그리고 한달 살이라는 개념이 생소하기도 해서 (왜 한달을 방황하냐, 라는 질문을 나도 많이 들었다) 영월에서는 아직 많지는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흔히 지역 언론이 다 죽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역의 주된 공론장은 지역지다. 강원도 영월에는 강원도의 언론, 그리고 영월 내의 지역 언론이 있다.


무가지에서 구인광고를 찾는 것처럼, 지역 언론 광고는 대부분 지역 내에서 구인, 매매, 매물 광고를 담는다. 영월 지역언론인 영월 신문 사이트에 들어가면 부동산 매매, 전세, 이런 것들이 있고 펜션 광고도 많다. 대충 이런 곳을 통해 이동네의 월세, 전세 시세를 파악하고 전화를 돌리고 다시 거절당하고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무모한데, 내 가장 큰 실수는 지역 지도를 계산하지 않았던 거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30분이면 걸어서 40분인 경우가 있지만, 영월에서 자동차로 30분이면 걸어서 2시간이 넘을 수도 있다. 교통 체증이 덜하고 신호가 없어서 최고의 연비를 자랑하며 달릴 수 있기 때문에 도보 거리로 오고가겠다는 생각은 내려놔야 한다. 


지금 머무는 곳은 삼옥이라는 마을인데, 읍내까지 차로는 15분 안짝이지만 걸어서 가면 두 시간이 훌쩍 넘는다. 게다가 평지도 아니고 굽이굽이 끼기 때문에 매번 오고가는 것을 철인3종경기급으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대도시처럼 버스와 지하철이 밤낮을 달리지 않기 때문에 나처럼 운전에 서툰 사람은 최대한 접근성을 고려해서 집을 찾아야 했다.


인스타에서 영월을 검색하면 래프팅, 펜션도 많이 나오지만 다시 검색 필터를 추리다 보니 청년사업단이 보였다.


우리 집 근처에도 혁신파크가 있고, 거기서 청년청이 있어서 청년 관련 사업을 하는데 영월에서도 비슷한 것들이 있는 것 같았다. 인스타를 둘러보니 내가 원하는 테마 (머무르기, 혁신, 도시재생...)같은 얘기를 많이 하고 있었고, 인스타 리스트를 보니 내가 찾던 카페나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같은 사람들 리스트를 볼 수 있었다.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실례일 수는 있지만, 일하던 짬밥을 되살려 콜드메일을 보냈는데 다행히 담당자분께서 친절하게 답장을 주셨다. 업무 시간이 끝난 때였지만, 연락처도 알려주시면서 그날 당일 통화를 무사히 마치고, 필요한 집의 요건 (일할 수 있는, 독채, 널찍한, 도심이 아닌) 을 전달드려서 혹시 좀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영월 청년지원사업단의 건물. 

첫 연락은 4월 22일에 드렸지만 딱히 그럴싸한 답은 받지 못했다.


웹으로 뒤지는 건 한계도 있고, 동네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진짜 내가 살 수 있을지를 눈으로 직접 봐야 할 것 같았다. 다가오는 어린이날 연휴에 방을 잡고 직접 실사를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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