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먹고 경험하는 것 외에 내가 즐기는 것은 바로 현지 친구를 사귀는 일이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다른 손님, 식당 직원, 게스트 하우스의 스태프들, 게스트 하우스에서 같이 머물고 있는 다른 여행자들. 오며 가며 때로는 단발적인 가벼운 대화는 나에게 여행지의 추억이 되곤 했다.
'나처럼 여길 여행 온 다른 여행자들을 이런 사람이구나.'
'이 식당에는 이 메뉴가 맛있구나.'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 대화가 될 수도 있고, 돌아다니다가 조금 지쳐있는 나에게 주위 환기가 되는 기분 좋은 대화일 때도 있었다. 특히 현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그 나라에 대한 조금의 팁을 얻을 수 있는데, 그 나라의 특징, 볼만한 것들,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인드, 일상생활 등등 그 나라에 대해 겉으로 봤을 때만으로는 모르는 것들을 알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된다.
발리의 락다운이 시작된 4월 즈음, 나는 우붓으로 거처를 옮겼고 처음 한 달간 머물렀던 숙소를 떠나 우붓의 새로운 숙소를 찾고 있었다. 그때 발견한 럭키 패밀리 코티지. 이름 그대로 내가 3개월을 그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전형적인 발리 전통 가옥인 호스트의 집 옆에 있는 2층짜리 코티지. 침대와 욕실 그리고 발코니가 딸린 방이 8개 있었고, 그 큰 코티지를 다른 손님 없이 나 혼자 이용했다. 수영장과 자그마한 키친, 정자도 마당에 있었다.
호스트인 카덱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 3번 온 집 안을 돌아다니며 향을 피우는데, 매번 나와 마주칠 때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라며 인사를 나누고는 했다. 늘 발리 전통옷을 입고 향을 피우는 카덱을 보면서 발리 힌두교가 발리 사람들의 생활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있는지 알게 되었다. 카덱에게 "오늘은 뭐해?"라고 물으면 늘 "오늘은 힌두교 행사가 있어서 일해야 해.", "오늘은 사원에 가야 해서 외출할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카덱의 집에는 두 마리의 강아지가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1~2주쯤 지나자 나를 가족으로 인식했는지 내가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대문 앞으로 쫓아와서는 꼬리 흔들며 반겼다. 시간이 지나자 나와 함께 침대에서 잠들기도 했다. 카덱은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두르고는 했다.
락다운 시기에는 우붓의 대부분의 식당과 카페들도 유명한 곳이 아니면 문을 닫고 상점들과 우붓 전통시장도 열리지 않았다. 우붓 왕궁이나 유명한 우붓의 관광지들도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드라이브를 하며 경치를 구경하는 것 외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비교적 많았기에 카덱과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카덱은 현지인들만이 산책하러 가는 우붓의 큰 논길을 소개해주었고, 발리 전통 음식을 만들어 나에게 대접해주었다. 나도 한국 음식을 만들어 카덱에게 권유했고, 특히 한국 음식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카덱의 첫째 아들과 그의 여자 친구가 굉장히 좋아하고 관심을 보였다.
어느 순간 하루 일과의 끝에 우리는 커피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카덱이 앞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해나가고 싶은지, 아들들과 남편의 이야기, 발리 힌두교 문화에 대한 이야기, 코로나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에 대한 이야기 등등. 카덱은 나의 가족과 내 일에 관한 이야기도 궁금해했고,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게스트가 나 혼자 밖에 없어서인지, 코로나로 인해 서로 공통된 이야깃거리가 있어서인지, 관광 수요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고 있어서인지, 코로나로 인한 공감대와 서로에 대한 감사함으로 카덱과 나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9월 초 한국행을 결심하고 떠나는 날,
"나는 너의 발리 엄마니까 발리에 올 때는 언제든 연락해."
카덱은 내가 가면 이제 코티지가 텅 빌 텐데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발리 엄마'
내게 또 다른 엄마와 가족이 생긴 것 같아 든든했고, 우리는 지금도 SNS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다시 발리가 외국인에게 문 여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여행이라고 하기에 오랫동안 지냈었고 특수한 상황이었기에 가능한 것이 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다시 발리를 갔을 때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