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가 천국인 이유
3월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연쇄 총격으로 8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 6명 중 무려 4명이 한인 여성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Black Lives Matter'에 이은 #Stop Asian Hate의 물결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 SNS를 통해 확산되어갔다. 차별과 증오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아시아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은 각양각색이다.
덩치 큰 백인 남성들의 캣콜, '칭챙총', '곤니치와'와 같은 본인이 알고 있는 여러 아시아 말들을 총동원해 내뱉으며 지나가는 사람들, 갑자기 붙잡아 세우고는 아시아 국가명을 하나씩 말하며 국적 맞추기 스무고개를 하는 사람, 손가락으로 두 눈 끝을 찢어 보이는 사람, 남자뿐만 아니라 어느 히스패닉 여성에게 머리채를 잡힌 적도 있다. 심각하진 않더라도 길거리에서 지나치며 처음부터 시야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빤히 쳐다보는 시선은 늘 느끼는 차별이다.
본인과 다른 것에 신기함을 느끼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지만 그 감정이 도를 넘어 불쾌한 시선과 언행이 되었을 때, 그 감정을 받는 사람의 당혹함과 씁쓸함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 한 구석을 콕 찌른다.
'나도 똑같은 인간인데. 너도 한국에 오면 외국인이거든.'
그래서 특히 미국이나 유럽 쪽을 여행할 때에는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설명하기 애매한 차별에 무뎌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에스토니아에서 생활한 지 한 달이 지났을 즈음이었나 문득 '여기는 유럽인데 차별받은 적이 없네.'라는 행복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끔 귀여운 어린 아기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볼 때는 있었지만 청소년 이상의 어른들은 한 번도 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지도 않을뿐더러 차별하는 발언을 들은 적이 없었다. 캣콜도 없었다. 딱 한 번 취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국적 맞추기 스무고개를 시작했지만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말려주었다.
같은 유럽인데 왜 다를까?
나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였던 트린과의 대화 그리고 에스토니아를 돌아다니며 도시 곳곳에서 보았던 에스토니아 역사의 흔적으로부터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었다.
에스토니아는 1200년대부터 1920년 한 나라로서 인정받고 독립하기 전까지 약 7백여 년 간을 덴마크, 스웨덴, 독일,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의 통치를 받았다. 심지어 1920년 독립 이후,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또다시 구소련 국가로서 1991년까지 사회주의의 지배를 받아왔다. 긴 시간 동안 독일과 러시아 귀족의 착취를 당하고 전쟁으로 인해 강제 점령당하며, 에스토니아 국민에게는 무엇보다 자유와 독립의 의의는 소중한 것이 되었다.
트린은 독일과 특히 소련이 에스토니아뿐만 아니라 발트 삼국을 비롯해 주변국에 저질렀던 만행은 심각하고 끔찍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미처 배우지 못했던 다른 역사의 일부분에 대해 알게 된 느낌이었다.
본인들이 에스토니아인이기에 받아왔던 핍박의 역사를 본인들의 손으로 되찾은 나라에서는 되풀이되게 하기 싫어서일까.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는 실제로 50%를 조금 윗 돌 정도의 에스토니아인이 거주하고 있고 그 외의 절반은 러시아인이나 주변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에서 온 사람들 등 외국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탈린에서 생활했던 2달 동안 차별로 인한 트러블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피부색과 생김새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영어를 사용해도 반갑게 맞아주고, 한 사람으로서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듯한 에스토니아 사람들에게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유럽 여행 중에 느끼는 인종차별에 조금 지쳐있다면 에스토니아에서 쉬어가면 좋을 것 같다. 겉보기에는 차가워 보이지만 차별 없는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따스함에 금방이라도 이 나라의 매력에 빠지고 싶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