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2020년, 안녕 2021년

에스토니아에서의 새해 카운트 다운

by 노마드마리

2020년은 4월부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패닉과 락다운으로 다들 세상이 슬로모션처럼 멈춘 듯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도 작년 말부터 백신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조금씩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했고, 야속하게도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2020년이 훌쩍 지나가고 2021년이라는 새해가 밝아왔다.

개인적으로는 2020년의 365일이 그대로 2021년으로 옮겨온 것처럼 느껴진다.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없어진 한 해처럼 느껴진다.




2020년 12월, 에스토니아로 떠난 나는 조마조마했던 입국심사를 거쳐 무사히 수도 탈린에 입성했다. 탈린에서도 13세기 중세 느낌 물씬 나는 올드타운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에스토니아는 대한민국 면적의 절반 크기이지만, 인구가 한국의 20% 조금 넘는 130만 정도에 지나지 않는 작고 인구밀도도 낮은 나라이다. 그래서인지 유럽 내에서도 코로나 확진자 수가 적었고,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2m의 거리두기를 권장하는 정도였다.

덕분에 다른 유럽에서는 락다운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이 다 취소되었지만, 에스토니아에서는 탈린을 비롯해 각 도시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그대로 개최되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노점들, 따뜻한 와인을 마시면서 밖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걸 올해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뜻밖의 풍경에 2020년 한 해 코로나 때문에 뒤숭숭했던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비교적 규칙을 잘 준수하는 편이었다. 소규모의 가족들과 친구들만이 거리에 모여있었고 30% 정도의 사람들이 실외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한국의 방역 체계에 비하겠냐만은 '마스크 따위는 쓰지 않을 거야.'라는 시위는 없었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길거리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할지 아닐지 선택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아무래도 확진자 수가 증가 추세에 이르자 에스토니아 정부는 음식점의 테이크아웃 영업과 실외에서의 마스크 착용도 의무화했다.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영화관, 실내 체육시설 등 실내에서 이뤄지는 행사와 이벤트는 금지시켰다. 일일 확진자는 5~6백 명, 많을 때는 7~8백 명에 이르렀다.



조용한 연말을 보내고 있던 와중, 문득 새해 전야의 카운트다운 불꽃놀이가 생각났다.

'2020년 새해는 포르투에서 불꽃놀이를 봤는데... 올해는 볼 수 있을까?'


유연성 있는 에스토니아 정부의 방역 체계를 믿어보며 올드 타운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로 올랐다. 11시 50분이 조금 넘자 불꽃은 하나둘씩 근처 공원과 시내 곳곳, 그리고 먼 항구 쪽에서도 터지기 시작했다. 전망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대다수였지만, 다들 웃는 얼굴로 폭죽이 터지자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 지금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는 거 맞지? 우리 코로나 끝난 거 아니지?"


유럽 각국의 미디어에서는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집에서 볼 수 있게 생중계해주고 있었지만, 나는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눈 앞에서 폭죽이 터지는 광경을 보고 있다니. 다 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10, 9, 8, 7... 3, 2, 1, Happy new year!!"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가장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웃음. 함께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는 순간들.

함께 소중한 순간을 옆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들. 손 잡고 포옹하는 그런 따스함.


카운트다운을 하는 짧은 몇십 분의 순간이었지만 해방감을 느꼈다. 폭죽은 새벽 4시까지 계속 터졌고, 올드타운을 거닐자 여기저기서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한 해의 시작을 축복하고 있었다. 신나게 들떠있는 사람들.


2022년을 맞이할 때는 온 세상이 다 이렇게 신나게 들떠서 맞이할 수 있기를.

2021년도 어김없이 불꽃놀이와 함께 한 카운트다운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에스토니아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