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매력

여기가 발리 맞나요?

by 노마드마리

삶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할 때 반전의 매력을 보여준다. 나에게 킨타마니는 그런 존재였다.


5월 초, 우붓의 생활에도 조금씩 익숙해질 때 즈음 새로운 곳을 원했고 1,400m 고지의 북쪽으로 달렸다. 발리섬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바다는 쉽게 떠올리지만, 산은 떠올리지 못한다. 발리의 북쪽에는 2000년대에도 폭발한 적이 있는 두 개의 활화산이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발리는 화산섬이다.


아궁산의 화산 폭발로 생겨난 칼데라. 그 칼데라 안에 또 다른 화산 폭발로 생긴 바투르 산과 호수.

처음 바투르 산을 봤을 때 나의 반응은 "우와! 여기, 스위스 같아!"

고산지대 이기에 원두가 생산되어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들이 많아 또 한 번 반해버린 마을. 그래서 나는 일주일 동안 킨타마니 마을에서 생활하기로 결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엄청난 시련들이 나에게 닥칠 것이고, 발리를 바라보는 눈이 확 달라질 것이라고는.




일주일 중 이틀 정도를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장마처럼 비가 내리고 오후 4시쯤이면 어두워지는 하늘에 여기가 발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우울해졌다.

‘처음 보여준 화창했던 모습은 다 거짓이었던 거야...’

체감온도는 한국의 초겨울과 비슷했고, 난방도 없는 방 안에서 급하게 도쿄에서 가져온 가장 두꺼운 옷이었던 트렌치코트를 껴입었다. 이 곳의 발리 사람들은 패딩을 입고 다니더라.


발리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은 발리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무슬림들도 꽤 있었고 모스크도 볼 수 있었다.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은 전혀 없고, 전통 시장이 오전에만 열리는데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현지 상인들과 번역기와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식재료를 구입했다. 관광지의 면모보다는 현지에서 살아남기에 더 가까운 하루하루였다.

킨타마니 지역의 발리인들은 내가 지나가면 치노(중국인)이라며 수군거렸는데,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 날씨만큼이나 차가운 태도를 보였다.



바투르 산과 호수의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칼데라 안으로 내려가자, 화산석을 채취하는 사람들, 꽃과 고랭지 채소들을 재배하는 밭, 벽돌로만 쌓아진 집. 칼데라 안에는 발리에서도 비교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하루는 겨우 날씨가 맑아 바투르 산을 오르기 위해 오토바이로 산 입구까지 올랐는데, 바투르 산 투어 가이드 협회 스태프가 "원래 가이드료 5만 원 받아야 하는데, 입장료 7천 원만 받을게."라며 흥정인지 협박인지 훼방을 놓는 바람에 기분이 상해 등산을 포기했다.

알고 보니 이 협회가 바투르 산의 독점권을 주장하며 발리 물가로는 꽤 비싼 돈을 관광객으로부터 뜯어내고 있는 상황이라 발리 정부에서도 어쩌지 못하고 비난이 끊이지 않는 부분이라고.

킨타마니 지역은 유네스코에서 자연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아름답고 가치가 있는 곳이고 발리 사람들에게 신성하게 여겨지고 있는 곳인데, 이런 곳에서 발리 관광업의 민낯과 마주하게 되다니 씁쓸한 기분이었다.




킨타마니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은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로 몇 백 년간 인도네시아를 지배했을 당시, 발리에서 네덜란드인들을 북쪽 끝까지 밀어내 버리고 정착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한다. 발리 사람들의 강한 의지 덕분에 발리는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네덜란드의 침략으로 인한 악영향이 제일 적은 곳이라고. 킨타마니 마을 사람들의 외부 사람들에 대한 쌀쌀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맑은 날에 칼데라 위의 카페에 앉아 바투르 산과 호수, 칼데라 전체를 바라보고 있자면 발리가 아닌 곳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멀리서 봐야 아름다운 것도 존재한다. 발리에 가면 킨타마니에서 머무르진 말고, 커피 한 잔 하면서 그 풍경을 보길 추천한다. 시원한 바람과 거대한 화산의 모습에 발리 남쪽에서 받아왔던 열기를 식힐 수 있을 것이다.


킨타마니에서 일주일 간의 생활을 통해 발리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고, 발리의 동서남북의 각기 다른 매력을 더 깊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조금, 발리를 알겠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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