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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마리 Apr 26. 2021

윤며드는 중

윤여정 배우님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을 조심스럽게 예측하며

한국에 들어오고 자가격리가 끝난지 얼마되지 않아 나는 계속 보고 싶어도 보지 못했던 영화 '미나리' 관람에 나섰다.


연초는 겨울에서 봄이 되는 것이 즐겁듯 영화팬인 나에게도 즐거운 시즌이다. 작년도에 개봉했던 영화들을 총결산 하는 영화제들이 많이 개최되는데, 특히 내가 즐겨 챙겨보는 것이 바로 골든 글로브상, 미국 배우 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그리고 항상 그 대미를 장식하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다.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큰 시상식의 후보자와 수상자를 예측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봉준호 감독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한 나라의 영화제일 뿐이라고 했지만, 그 규모와 그 상의 수상으로 인한 세계적인 인지는 무시 못할 것이다.


내게 '미나리'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미국 영화지만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워낙 서양권에서 높은 인지도와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 영화지만 워낙 좋은 작품이 많은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에서 제작하기도 했고, 특히 보통의 미국 영화라면 미국계 한국인 배우를 쓰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는 윤여정 배우님과 한예리 배우님이 캐스팅 되어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이래저래 나에게 흥미롭게 비춰졌던 영화 '미나리'를 보고, 나는 '아...'라는 반응을 했다. 왜냐하면, 이건 그냥 나의 어린시절과 비교해도 특별히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한국인 가정'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이 배경이고, 미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교회를 통한 커뮤니티 형성(사실 이것도 한국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 때의 미국 한인 사회와 한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 정도.



혼자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려 노력하는 남편.

남편과 자식만을 바라보며 그저 믿고 기다리고 참는 아내.

본인이 자기 자식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또 본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할머니.

그 장소는 달랐지만 이 영화가 손자 데이빗의 시선으로 그려지기에 더욱 더 영화 '미나리'의 가족들의 모습이 어린 시절 내가 바라봤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모습으로 느껴졌다.


밭일을 하며 밥벌이 생각에 고된 표정을 짓고, 회초리로 아이들을 훈육하는 모습을 연기한 스티븐 연 배우의 모습에서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고, 남편이 밭에 물을 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알면서도 모른척 하고, 데이빗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연기한 한예리 배우의 모습에서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 열실히 보였다.

그리고 인상 깊은 듯 인상 깊지 않게 가족에게 조용히 스며드는 할머니의 모습을 연기한 윤여정 배우님의 모습에서 나의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갓난 애기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줄곧 우리 가족과 함께 지냈던 외할머니. 영화 '미나리' 속 할머니는 딸의 가족을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거처를 옮기고, 아이들을 돌보고 그 와중에 병을 얻게 되고, 거동이 불편한 와중에도 짐이 될까 끊임없이 집안일을 도우려고 하고. 그 과하지 않지만 넓은 마음으로 애쓰지 않지만 깊은 마음으로 가족 전체를 챙기는 우리네 할머니의 모습을 윤여정 배우님이 참 잘 표현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영화 '나홀로 집에'를 보면서 참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가족인데 바다 건너 저기 있는 가족들의 관계, 살아가는 환경과 일상이 참 우리네와는 다른 부분들도 있구나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서양권 사람들은 그런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한국인 가족들은 이렇게 살구나.

그 와중에 가족들의 관계나 사는 방식들은 좀 다르지만 가족 간의 사랑, 헌신, 책임 같은 공통적인 부분에는 또 감동받지 않았을까?



'미나리'의 영화 감독 정이삭의 자전적 영화이기도 한 이 영화에서 감독은 '물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를 왜 굳이 택했을까? 감독이 의도한 의미도 있을 테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봄이 되면 향긋한 향을 풍기는 미나리를 찾게 되듯, 우리가 마음 속에 봄과 같은 따스한 기운을 느끼고 싶을 때 삶의 순간순간에 찾게 되는 것이 바로 가족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다음 날 아침, 가족들이 거실 바닥에서 다 함께 자고 있는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던 할머니의 따스한 눈빛처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다른 배우인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의 연기도 봤는데, 두 배우 다 당연히 너무나 연기를 잘하지만 이번에는 미국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생소한 한국 할머니를 연기한 윤여정 배우님이 다른 영화제에서 이미 많은 수상을 한 이력에 힘입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되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한국 배우로서는 처음 연기상을 수상하게 되는 것. 윤여정 배우님의 또다른 재치있고 윤며들게 만들고 싶은 수상소감을 듣게 되길 바라며, 내일 아침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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