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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마리 Oct 01. 2021

롱 베케이션의 끝

내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는 이유

내가 이런 메세지를 브런치로부터 받은 것은 9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

'나도 알아.'


코로나 판데믹 중에도 발리와 에스토니아에서의 생활을 이어나가던 도중, 해외 여행에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발리와 에스토니아에서의 삶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인스타그램 뿐만 아니라 브런치에도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다행히 몇 번의 탈락의 쓴 맛을 보았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 초 무사히 브런치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 딱 한 번 '밀리의 서재' 출판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 글을 쓴 것 외에는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은 잘 알지만, 첫 술에 조금이라도 배부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이기적인 심정.

에스토니아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들어온 나는 긴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했다.


여행하는 나의 삶이 너무 좋았던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의외로 삶은 잘 굴러간다.



그런 나의 삶에 최근 메세지를 던져준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 사건은 전라남도 고흥에서의 첫 서핑 경험이었다.

'처음'이라는 것은 늘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선물한다. 나는 한동안 그 자극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다.

발리에서 6개월이나 생활했건만 나는 '서핑'이라는 것에 전혀 접점을 가지지 않았다. 발리의 바다는 많은 서퍼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발리에서는 어린 아이들조차도 서핑을 한다. 

내가 서핑을 피했던 이유는 서핑보드에 발목을 묶어야 한다는 무엇인가에 발목 잡혀야 하는 두려움과 중학교 때 계단에서 떨어져 발목을 크게 다친 이후 두 발 모두 땅에서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해 공포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너무 쉽게 '서핑'을 허락해버렸다. 대단한 각오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만 한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지인이 서핑을 좋아한다기에 같이 하러 가지 않겠냐는 한 마디에 별 생각 없이 바다구경을 하러 따라 갔다 엉겁결에 나는 서핑보드와 함께 바다에 던져지게 되었다.

생각보다 파도는 잔잔했고 덕분에 큰 파도에 휩쓸리는 경험을 하지 않았다. 잔잔한 파도 위에서 서핑보드에 앉기도 하고 엎드려 있기도 하고 파도를 타고 몇 십번 일어서보려는 노력을 했다. 그 몇 십번의 노력 중 딱 두 번 나는 파도를 탔다. 타다가 중간에 또 바닷 속으로 고꾸라지긴 했지만.

파도를 타며 잠깐 나는 바다 위에 서 있는 바다의 신이 된 듯한 느낌과 물 위에서 맞는 바닷바람으로 인해 해방감을 느꼈다. 발목이 잡히는 두려움은 곧 내가 서핑보드와 물아일체가 되어 바다 위에 서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두 발 모두 땅에서 떨어져 있는 공포감은 바람을 타는 자유로움에 금새 잊혀져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즐겁게 했던 건 내가 정말 생각보다 물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물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이 서핑보드를 타다가 몇 십번 씩 바다 속으로 고꾸라져도 나를 일으켜주었다.


두 번째 사건은 일본 드라마 '롱 베케이션'을 다시 보면서 들은 한 대사가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경험이었다.

일본 생활이 가끔 그리울 때마다 나는 일본 드라마를 챙겨보는데, 워낙 유명했던 키무라 타쿠야가 나오는 일본 드라마 '롱 베케이션'을 최근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야마구치 토모코 배우가 연기하는 미나미라는 이름의 여주인공은 결혼식 날 신랑이 실종되어버려 하루 아침에 집도 없고 결혼식 준비 때문에 돈도 없는 슬픈 신부로 전락해버렸다. 그 때 본인의 피아노 실력에 비해 주목 받지 못하고 짝사랑도 잘 풀리지 않던 키무라 타쿠야 배우가 연기하는 남주인공 세나는 미나미와 함께 이야기 하며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음'에 대해 서로 위로하고 있었다.

그 때 세나는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신이 준 휴가'라고 생각하라고, 긴 아주 긴 방학을 받은 거라 생각하라고 미나미를 위로한다.



나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에스토니아에서 돌아와 보냈던 6개월이란 긴 기간은 긴 방학이었다.

'신이 준 휴가'. 그 말에 나도 무언가 위로를 받았다.


서핑을 하던 당일은 너무 피곤해 바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경험한 나에게 서핑은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시작하는 것, 두려움과 공포보다는 좋아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도전하는 것, 바다 속으로 고꾸라져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6개월간 내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통역과 번역으로 조금씩 여전히 돈을 벌고 있고, 두 개의 청년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해 한국의 새로운 지역에서도 생활했고, 처음으로 한라산도 등반했고, 아침에 요가와 명상을 하는 아침루틴을 만들어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나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다만 좀 더 새롭고 생산적이지 않았을 뿐. 다음 단계로 나를 발전시켜나아가려고 하지 않았을 뿐. 나는 그래도 내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의 족적을 남기기 위해 아둥바둥 하고 있었다.

나는 나의 그런 몸부림을 내가 찍었던 사진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회고했다. 


'그래, 무엇인가 남기는 것은 이렇게 중요했지.' 


나의 족적을 기록하는 건 나에게도 위로가 되었고 돌아보면 힘이 되었다.

하지만 사진만으로는 내가 그 당시 경험했을 때 느꼈던 감각과 배움을 다 남기고 기록하기에는 모자라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사진을 봤을 때 추억하는 나의 느낌을 글로 써 내려가는 것. 그것은 좀 더 명확하게 경험을 남길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나는 10월의 첫 날, 에스토니아에서의 생활을 다시 한 번 기록하기로 마음 먹었다.

에스토니아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어떤 배움이 되었는지 내 몸에 어떤 감각을 남겼는지 다시 되살리며 또 앞으로 나아가볼 생각이다.

긴 방학을 끝내고 다시 등교하는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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