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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닥쓰담 Jun 27. 2020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에 대한 대답


우리나라 학교나 기업의 조직문화는 대단히 권위적이다. 

학교는 애초부터 군대와 똑같게 만들어진 조직이고, 기업 조직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체계와 똑같은 조직문화 속에서 학교 다니고 군대 갔다 와서 기업에 들어가는 시스템이다. 


대학은 좀 나을까? 교수와 조교 관계를 생각해보면 군대보다 나을 것도 없다. 

이제는 학교에서 체벌도 사라졌고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되어 있다. 

그럼 학교는 이제 권위적이지 않은 건가? 

그런데 학생들은 교사에게는 안 하는 인사를 선배들에게는 한다. 

같은 동급생끼리 인싸가 있고 아싸가 있고 맨끝에는 왕따가 있다. 

이런 식의 비공식적 위계질서는 예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심각하고 폭력적이다. 


예전에는 교사가 학생을 때리고 욕하고, 군대에서는 선임이 후임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회사에서는 부장이 과장에게, 과장이 대리에게 막말을 하고 서류를 집어던졌다면,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양상이 달라졌다. 

꼭 높은 계급이 아래 계급에게 갑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계급 내에서 차별과 괴롭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군대에서도 인싸와 아싸로 나뉜다. 

인싸에 들어간 후임이 아싸 선임을 대놓고 비웃고 놀려먹어도 인싸 선임들은 같이 낄낄거리고, 놀림을 받은 아싸 선임은 후임에게 말대꾸도 못하고 알아서 짜져야 한다. 

체벌이 사라졌다고 해서, 학생이 교사에게 할 말 다한다 해서, 후임이 선임을 놀려먹는다 해서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민주적인 사회가 된 게 아니다. 

권위주의는 사회 전반에 오히려 더 넓게 퍼졌다. 



권위주의는 ‘자신보다 상위의 권위에는 강압적으로 따르고, 하위의 것에 대해서는 오만하게 행동하려는 심리적 태도’라고 정의된다. 

정치학적으로는 권위주의를 ‘상층 계급에 대한 선망이 내면적으로는 적의로 쌓여 하층 계급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강자에게는 꼼짝못하고 떠받들면서 약자에게 갑질하는 것’이 권위주의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예전보다 훨씬 더 지독한 권위주의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훨씬 더 나쁘다. 

눈에 보이는 명백한 폭압에 맞서 피지배계급이 서로 연대할 수 있었던 예전에 비해, 이제는 핍박받는 자들이 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맞고 돌아서서 가해자가 되어 자기보다 힘없는 자를 짓밟고, 그 사슬의 맨 끝에 몰려 있는 가장 약한 자가 그 자리를 벗어나기를 그 누구도 원치 않고 아무도 도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지독한 권위주의 사회에서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집단에서 힘 있는 자를 중심으로 인싸를 형성하고, 인싸 안에서는 미묘한 서열 경쟁을 하면서, 밖으로는 인싸로 진입하려는 아싸들이 함부로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장벽을 치고, 또 한편으로는 아싸 중에서 왕따 한 명을 정해 본보기로 삼음으로써 나머지 아싸들이 자기가 그나마 왕따는 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조용히 아싸 자리를 지키도록 관리하는 이 모든 일들을 일컬어 ‘사회생활’이라고 한다. 


대략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이런 사회생활을 익히기 시작해서 중고등학교, 대학교, 군대를 거쳐 회사에 들어가서도 같은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한다. 

심지어 의사, 검사가 되고 대기업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사회생활’을 잘하지 못하면 그 조직 안에서 자리 잡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사회, 이런 조직에서 주변과 잘 지낸다고 하는 것은 ‘공동의 선을 이루며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화합’이 아니라 각자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사람과 연맹을 맺고,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는 손절해버리는 합종연횡을 말하는 것이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라고 오랜 세월 자신을 책망하며 괴로워해왔다면, 지금까지 한 이 긴 얘기에서 답을 얻었기를 바란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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