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출근시간 지하철 환승역.
열차 문에서 쏟아져 나와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과 그 열차를 타려고 뛰어내려가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올라가는 물길, 내려가는 물길을 만들었다.
그 한가운데 계단참에 시각장애인이 갇혀 서 있었다.
올라가는 물길에 쓸려 올라가고 있던 나는 그 사람이 있는 위치까지 갔을 때 “제 팔 잡으세요” 하고 그 사람 손을 잡아 내 팔을 붙들게 하고 물길을 가로질러 벽쪽으로 끌고 갔다.
한쪽 손을 휘둘러 사람들을 막으면서.
“잠시만요! 잠시만요!”
그렇게 계단참 벽에 잠시 붙어 있다가 사람이 좀 빠지고 나서 계단을 내려갔다.
나보다 열 살 정도 젊어보이는 그 여자분은 계속해서 고맙다고 말했다.
“아, 정말 고맙습니다. 바쁘실 텐데...”
계단을 거의 다 내려갔을 때 내가 물었다.
“이제 바닥에 있는 노란 안내선을 따라가야 하는 거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질문이 있나!’ 하고 바로 깨달았다.
시각장애인에게 ‘노란’ 안내선으로 가면 되냐고 물어보다니... 당황스럽고 미안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속상한 그 ‘노란’ 점자블록을 스틱으로 찾았을 때, 그 사람은 인사를 하며 말했다.
“이제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도 어차피 가는 길인데요 뭐.”
그렇게 몇 걸음 가다가 나는 또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타시는 곳이 어디예요? 여기 4-3인데 여기서 타시면 돼요? 늘 타시던 곳 번호가 몇 번이에요?”
(‘아! 이런!! 시각장애인이 4-3, 4-4 숫자를 보고 다녔을 리가 없잖아!’)
“네, 그냥 여기서 타면 돼요.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히 살펴 가세요. 저는 이만 갈게요.”
“네. 정말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오던 길을 다시 걸어가 계단을 올라가다가 아까 그 사람이 오도 가도 못 하고 서 있었던 그 계단참에 이르렀을 때쯤, 나는 ‘아!’ 하고 또 내 잘못을 깨달았다.
노란색이니 4-3이니 그런 걸 물어본 것만 잘못이 아니라, 같이 걸어가는 내내 말을 시킨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저는 아줌마고요. 출근하던 중인데 아직 시간 여유 있어요. 타시는 거 보고 갈게요.”
내 딴에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 거지?’라고 불안해할까 봐 건넨 말이다.
“5호선 타려고 하는 거 맞죠? 어느 방향을 타야 돼요? 광화문 방향? 김포공항 방향? 아~ 광화문 방향을 타셔야 되는구나. 상일동행이나 마천행 아무거나 타도 돼요? 그럼 이번에 오는 열차 타시면 되겠네.”
이건 혹시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엉뚱한 열차를 타게 할까 봐 한 말이다.
하지만 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끊임없이 말을 나누는 건 눈이 보이는 사람들한테는 아무 일도 아니겠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엄청난 방해가 될 수 있다.
내가 그 입장이라면 방금 전의 상황은 어떤 것이었을까.
요만큼 가고 나서 왼쪽으로 턴, 또 요만큼 가면 계단 시작... 이렇게 매일 다니는 익숙한 길을 감각의 기억으로 찾아서 가는 건데, 중간에 누군가 불쑥 나타나 끌고 가면서 계속 말을 시킨 뒤에 나를 어딘가에 세워놓았다. 내 감각은 이미 뒤죽박죽이 됐고, 이제 오로지 방금 전에 나를 이끌어서 이 자리에 데려다놓고 사라진 누군가가 부디 나를 제대로 인도했기만을 바랄 뿐이다. 여기가 어딘지, 난 이제 어디를 기준으로 다시 감각을 계산해야 할지...
내가 돕는답시고 한 행동이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고맙기보다는 난감하고 짜증나는 일이었을 것 같다.
나는 방금 무슨 짓을 한 건가!
누군가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먼저 “도와드릴까요?”라고 묻고, 상대방이 도와달라고 하면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도와주기를 원하는지 물어야 한다...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런데 막상 행동을 할 때는 그게 잘 안 된다.
그 여자분은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나에게 분명히 말했었다.
“이제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나는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내가 딱 보니까 지금 너한테는 이런 도움이 필요해’
이런 식으로 ‘딱 보고 알아서 도와주는’ 도움은 대개는 깨진 바가지로 물 퍼주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내 항아리에서는 물을 한 바가지 퍼냈는데, 받는 사람 항아리에는 반 바가지도 안 들어간다.
줄줄줄 쏟아져서 옷만 다 젖고, 물을 열두 항아리는 퍼준 것마냥 천지가 물바단데...
물을 퍼주는 행동만 있고 물은 없다.
어린아이들이 하는 ‘착한 일’이 이렇다.
정말로 엄마를 도와주고 싶어서, 단전에서부터 콧구멍까지 차오르는 열심으로 도와주지만 그건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라 그냥 ‘착한 일’일 뿐이다.
엄마는 아이 하는 짓이 예뻐서 고마운 것이고, 아이는 엄마의 일이 잘돼서 기쁜 게 아니라 자기가 착한 일을 해서 뿌듯한 거다.
생각해보니,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도와준답시고 ‘어린아이 착한 일’ 같은 걸 계속 하면서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적도 있고 받은 적도 있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도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을 때 정말로 고마웠던 건 누군가 나에게 베풀어주는 호의나 선물 같은 도움이 아니었다.
“나 사실은 도움이 필요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해줬던 누군가, 기꺼웠든 아니든 간에 어쨌든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들어줬던 누군가였다.
마음이 짠해서, 울컥해서 누군가를 도와줘야겠다고 나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착한 일은 어린아이들도 한다.
정말 어려운 건 상대가 도와달라고 부탁할 때 그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는 누군가가 되어주는 일이다.
어른이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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