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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지 Nov 26. 2020

개인의 취향존중
중남미 여행 루트 짜기

박보검 + 세계 7대 불가사의 + 우유니 사막 = ?


때는 2019년 1월, 신년을 맞이하여 야심 차게 클라이밍 동호회에 나간 첫날이었다. 1m 높이에서 착지를 하다가 발목을 접질렸고, 정말 재수 없게도 인대 3개 중 2개가 완전 파열돼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3일 후에 예정되어 있던 홍콩 여행도 눈물을 머금고 취소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한 달 동안을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MBTI에서 E(외향성)가 100%로 나오는 천상 밖순이에게는 마치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삼시세끼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것은 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온종일 드라마나 TV 프로그램을 보는 게 전부였다. 나는 내 최애 배우, 박보검이 나오는 <남자친구>를 다시 보며 무료함을 달랬다.

ⓒ TVN 드라마 <남자친구> 공식 홈페이지
진혁 : 한 달 넘게 여행 스케줄을 짰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제 20대의 마지막을 행복한 여행으로 마무리하는 중입니다.

수현 : 마법에 걸린 걸로 해두죠, 마법.
ⓒ TVN 드라마 <남자친구> 공식 홈페이지

왠지 아바나에 가면 박보검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은 방구석이었지만 마음은 이미 아바나의 말레꼰에서 석양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아바나 병에 걸려 버렸다. 다리는 꼼짝달싹 못하지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손을 이용해 유화 그리기 세트로 아바나 말레꼰의 석양을 그리며 다짐했다. 20대의 마지막은 꼭 아바나에서 맞아야겠다고. 나도 아바나에서 살사를 추며 마법에 걸리고 싶다고.

이왕 중미를 가는 김에, 남미도 가기로 했다. 페루의 마추픽추를 보는 것은 내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인디애나 존스>, <툼 레이더>처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내 눈으로 다 확인해보고 싶었다.


또 아마존 정글의 나무집에서 묵으며 아마존 강에서만 사는 분홍 돌고래도 보고 싶었다. <아마존에서 살아남기>,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학습만화를 적어도 몇십 번은 봤을 것이다. 난 어린 시절부터 탐험과 모험을 꿈꾸는 아이였다.


더군다나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은 어떻고? 인생샷을 남기러 살면서 한 번쯤은 가야 하는 곳,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이 바닥에 그대로 비치는 곳. 이번 여행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혼자 가는 여행의 장점은 내 취향을 100% 반영해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미와 남미를 섞다 보니 루트 짜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통 멕시코와 쿠바를 묶어서 중미 여행을 하고, 남미는 아예 따로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 남미 여행 코스는 페루로 IN을 한 뒤,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OUT의 반시계 방향 루트(또는 브라질 IN, 페루 OUT의 시계방향 루트)가 '국룰'로 불린다.


나는 남들이 다 가는 곳이니까, 유명한 곳이니까 무작정 가는 것은 선호하지 않는다. 작은 도시라도 가고 싶은 분명한 목적이 있다면 최소 1~2박 정도는 꼭 해보고, 큰 도시라도 딱히 내키지 않으면 시간을 굳이 투자하지 않는다. 특히나 남미 대륙은 너무 넓기 때문에 남들처럼 모든 나라를 돌려면 일정이 너무 빡빡할 것 같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한 달이었고, 쿠바에서 최소 일주일은 보내고 싶었다. 나는 먼저 하고 싶은 것 리스트를 적어 보았다.



아마존 하면 브라질이지만, 브라질은 여자 혼자 여행하기엔 너무 위험한 나라라고 했다. 분홍 돌고래를 보러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으니까. 찾아보니 다행히도 광활한 아마존 정글은 페루까지 걸쳐 있었다.

이번 여행지는 쿠바, 페루, 볼리비아다.


가장 효율적인 루트를 찾으려고 스카이스캐너를 켜서 온갖 방법을 다 검색하며 머리를 싸매다 결국 다구간 항공권을 끊기로 했다. 쿠바로 갈 땐 멕시코에서 가는 게 제일 저렴하지만, 캐나다나 미국을 경유해서 가기도 한다. 비행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힘들 것 같아 경유지에서도 며칠 머무르며 휴식하고 싶었다. 이젠 체력이 이십 대 초반과는 다르니까. 멕시코시티와 뉴욕, LA를 후보에 두고 고민하다가 겨울에 따뜻하고 혼자 여행하기 좋은 LA를 선택했다.

이렇게 북미도 추가가 됐다. 이왕 간 김에 한 도시마다 최소 2박 이상은 하기로 했다. 4주,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빡빡해 보였다. 여자 혼자 남미를 간다니 부모님보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더 난리였다. 한 달 동안 남미 여행 카페와 블로그를 뒤지며 여행 준비를 단단히 했다. 미국, 쿠바, 볼리비아는 모두 비자가 필요한 나라라서 잘 알아보고 서류들을 꼼꼼히 준비해야 했다.

 

아마존에 가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예방주사도 다섯 종류나 맞았다. 왼팔에 세 방, 오른팔에 두 방. 그리고 수납을 하며 26만원이나 되는 예방접종비를 보고 머리에도 한 방.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하는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었다.

 

드디어 2019년 12월 31일, 한 달 여정의 막이 올랐다. 막상 비행기를 타니 두려움은 점점 사라지고 LA에 도착하니 설렘만 남았다.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2019년의 마지막 석양을 감상하고, 밤엔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 

'2020년에는 두 배로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2020년 1월 1일, 나는 꿈에 그리던 아바나행 비행기에 올랐다. 


20대의 마지막 여행에서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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