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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지 Nov 13. 2020

스물아홉, 혼자 중남미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고민보단 GO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이 직업을 몇 살까지 할 수 있을까?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나는 과연 지금 행복한가? 행복한데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건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데 내 생각을 고쳐먹어야 하는 건가?


누군가 어깨를 짚는 바람에 선잠을 자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안대를 벗었다. 승무원이 창문을 가리키며 손바닥으로 올리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알아채고 창문 가리개를 위로 올렸다. 망막을 때리는 햇살에 눈을 찌푸렸지만 곧 창 밖의 푸른빛이 하늘이 아닌 바다임을 깨닫고 고개를 창문 가까이 가져갔다. 짙은 터키빛의 카리브해 위로 순두부 같은 구름들이 몽글몽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처음 만난 쿠바의 하늘은 구름이 인상적이었다.



한국과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한국에서의 쓸데없는 고민들도 잊힌다. 그것이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


엄마도, 전 남자친구들도, 심지어 사주 아저씨도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생각이 많은 게 흠은 아니지만 마음 편히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스물아홉, 이십 대의 마지막 해는 생각이 없을 수가 없는 나이다. 안정적인 직장과 적당히 여유 있는 생활.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자꾸 불안해지는 나이, 스물아홉.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이 직업을 몇 살까지 할 수 있을까?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나는 과연 지금 행복한가? 행복한데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건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데 내 생각을 고쳐먹어야 하는 건가?


생각은 하면 할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하는 것도 결국 생각이다. 과부하가 걸린 나의 뇌는 이 모든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비현실적인 곳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서른이 되기 전, 혼자 중남미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여행지는 바로 중미의 보석, 쿠바였다.


어느새 비행기 바퀴가 땅에 거칠게 닿는 게 느껴졌다. 생명이 연장되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낯선 곳에 대한 기대감이 공존하는 순간. 


2020년 1월 2일, 스물아홉의 시작과 함께 나는 쿠바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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