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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지 Dec 11. 2020

베프의 결혼 하루 전, 직장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코로나, 꼭 오늘 나한테 그랬어야만 했니

고3 친구는 평생 친구라고 한다. 힘든 고3 시절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친구들. 어찌 보면 10대에서 가장 힘든 시기이자 어른의 길로 들어서는 고난의 관문을 손잡고 통과했기에 그런 말이 생겼을 것이다. 그 말대로 10년이 지난 지금도 고3 친구였던 우리 넷은 여전히 단톡방에서 매일 소소한 수다를 떠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우리 넷 중 가장 먼저 결혼을 하게 된 친구의 결혼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결혼식을 꽤 다녀봤지만 이렇게 가까운 친구의 결혼식은 처음이었다. 친구들은 부산에 살고 있었고 나는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함께 하고 싶었다. 직접 만나긴 힘들었지만 단톡방에서 반지, 웨딩드레스, 부케, 청첩장, 신혼 가구 등을 내 일 마냥 열심히 골라줬고, 친구들이 도와준다는 웨딩 촬영 땐 퇴근하고 저녁에 내려가서 밥이라도 같이 먹었다.


드디어 대망의 결혼식 전날. 나는 한 달 전부터 기차표를 예매해놓고 잔뜩 들떠 있었다. 결혼식 전날인데 기분은 어떠냐, 결혼식장에 택시를 타고 갈 거냐 지하철을 타고 갈 거냐- 등을 단톡방에서 즐겁게 의논하고 있었다. 하루만 더 있으면 교복이 아닌,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친구를 볼 수 있다는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식장에 들어가는 친구를 떠올리면 벌써부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침 9시 3분, 직장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긴급 알림이 왔다.


네?? 코로나 19 확진자요??
그럼 저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참으로 영화 같은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12월이 되면서 수도권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급증한다는 뉴스가 매일 뜨고 있었지만 직장-집만 왔다 갔다 하며 외식도 일절 하지 않던 나에게 일일 확진자 250명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항상 마스크 잘 끼고 다니고 방역 수칙도 준수하고 있으니까. '

그러나 검사 대상자가 되는 건 나의 노력과는 상관없었다. 운이 좋은 사람은 안 걸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운의 문제를 넘어선 것 같았다. 뉴스에서만 보던 코로나가 이미 일상생활 깊숙이, 넓게 침투해 있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카페 못 가는 것, 여행 못 가는 것은 그렇다 쳐도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 주러 가는 것까지 막다니.
코로나에 대한 원망이 치밀어올랐다.

 

마스크를 벗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꼭 옆에서 축하해주고 싶은 친구였는데... 아쉽고 속상한 마음, 허탈한 마음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명절엔 안 내려오는 게 효도라는 말에 추석 때도 못 만났던 부모님을 또다시 못 보게 된 것도 무척 속상했다. 엄마는 먼지 알레르기가 있는 딸이 온다고 아침부터 내 방 책상 위 먼지들까지 싹 닦고 기다린다고 했고, 아빠도 말은 안 했지만 생일에도 못 내려간 딸내미 얼굴을 몇 달만에 본다고 잔뜩 기대하고 있을 터였다.


왜 하필 오늘, 1년 동안 아무 일도 없다가 고향에 내려가기로 한 날 직장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건지.  

왜 나는 코로나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과 원치 않는 생이별을 해야 하는 건지.

참아왔던 코로나 블루, 코로나 앵그리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부모님과 친구들은 오히려 나를 다독여주었다.


"내려오다가 더 큰일이 생길 걸 예방했다고 생각해라."

"니한테 있을 안 좋은 일을 하늘에서 막아준 거라고 생각해라."


"내일 결혼식 때 영상통화 걸게. 같이 있는 것처럼."

"니 잘 볼 수 있게 동영상 잘 찍어 놓을게. 걱정하지 마라."


친구들, 가족들의 위로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오늘 터진 게 잘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부산에 있을 때나, 부산에 다녀온 뒤에 알게 됐으면 나를 만났던 친구들과 부모님은 모두 마음 졸인 채 생활을 했을 터였다. 내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부산에 내려가기 직전에 미리 알게 돼서 그 사람들을 걱정시키지 않아도 된 게 어디냐고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사실 코로나 19가 더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치사율보단 강하고 빠른 전염력 때문이다. 내가 아픈 것보다 나를 만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젊은 나는 금방 회복한다 쳐도, 나로 인해 옮은 누군가가 아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의 죄책감이 참 무서운 것 같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코로나에 잘 대처하고 있는 이유도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공동체 의식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래, 괜히 내려가서 친구의 결혼식에 찝찝함을 끼얹는 것보다 멀리서 축하하는 마음을 전해주는 것이 낫지.'


혼자 배달 음식을 먹으며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오늘 밤은 평소보다 조금 더 쓸쓸하겠지만,

친구에게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한다고, 조금만 기다렸다가 건강하게 웃으며 만나자고 문자를 보내야겠다.


사랑하는 옥아, 결혼 진심으로 축하한디.
비록 니 예쁜 모습을 옆에서 보진 못하겠지만 마음만큼은 늘 같이 있는 거 알제?
못 가서 미안한 만큼 더 많이 축하해줄게.
내일 하객룩 입고 꼭 영통하자.
행복하게 잘 살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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