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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지 Jan 03. 2021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

제주 돌담

나는 목표를 세우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좋아한다. 가만히 머물러 있으면 뭔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늘 목표를 세우고 이루기 위해 노력해왔다. 2020년, 내가 세운 목표는 '나만의 책 내기'였다.

시집가기 전에 시집 낼 거야


농담처럼 늘상 해왔던 말이었지만 왠지 서른이 되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서툴지만 뜨겁고, 아프지만 찬란했던 나의 이십 대에게 수고했다며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그래서 10년 동안 썼던 '적고 소중한' 시들을 모아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쓰는 브런치를 시작했다. 서른 살이 되는 2021년 1월에 책을 내는 것을 목표로.


처음엔 서른 살의 내가 이십 대의 나를 되돌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글을 쓸수록 사실 이 글들은 이십 대의 내가 서른 살의 나에게 보내는 조언이자 위로임을 느꼈다.

아픈 상처로 남은 사랑에도 좋은 추억들은 늘 존재했고, 아련했던 눈물들은 어느새 서른여 편의 시로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십 년의 세월을 지나며 '사랑'을 보는 관점이 많이 성장했음을 느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어 괜찮은 사람이 내게 오길. 대화가 잘 통하는 한결같이 따뜻한 사람이 나타나 주길.

그 생각이 정리되자, 정말 마법처럼 그런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나처럼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은 단점이 있다. 발전은 있지만 현재의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 행복은 미래도, 과거도 아닌 현재에 있기 때문이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바로 집에 있었듯이. 현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이 행복을 느낄 수 있었고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내 손을 잡고 잠깐 멈춰서 주위를 돌아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는 마음의 품이 넓은 사람이었다. 덕분에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의 자리를 내어줄 여유가 있었다. 그는 내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주었고 진심으로 공감해주었다. 공감을 받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그와 대화를 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그는 구멍 뚫린 나의 콘크리트 벽 틈으로 햇살처럼 들어와 얼어있던 마음을 따스히 녹여주었다.



2021년 1월 1일 카운트다운과 함께 나이의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다. 남들은 나이 먹는 것이 싫다고 하지만 나는 서른이 된 것이 정말 기쁘다. 20대를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았고 그만큼 많이 성장했기에. 덕분에 마음의 여유를 가진 따뜻한 사람을 알아볼 눈을 키웠고, 그런 사람을 만났기에. 새로 시작되는 나의 삼십 대가 무척 기대된다.




<제주 돌담>          


너무 빡빡하고깐깐한것보다

좀 듬 성 듬 성 틈 이 있어야

그 사이로

햇살도 들어오고

바람도 들어오고

나비 한 마리도 들어오지     


너무 빡빡하고깐깐한것보다

좀 듬 성 듬 성 틈 이 있어야

그 사이로

하늘도 보이고

바다도 보이고

노오란 유채꽃도 보이지     


그래야 뭐라도 들어올 여유가 생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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