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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Oct 11. 2015

파리행 비행기 안에서 그를 만났다

파리의 추억 vol.3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를 만났다.


첫 비행에 들떠서 찍은 수십장의 구름 사진 중 한 장

그 날은 생애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가는 날이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일본 도쿄를 경유해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는 약 16시간이 소요되는 일정이었고 그는 도쿄에서 파리로 가는 길 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비행기 창가 쪽 좌석을 좋아하지만 이 날이 첫 비행이었던 나에겐 이코노미 클래스의 창가 쪽 좌석은 영화관 맨 뒷줄 가운데 좌석 만큼이나 놓칠 수 없는 자리였다.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짐들이 실리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왼쪽 복도 자리에 중년이라고 하기엔 조금 미안한 Nobuo Hyodo 씨가 자리에 앉았다.


운이 좋게도

나와 그 사이엔 아무도 앉지 않았고 긴 비행을 조금은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가운데 빈 자리를 보면서 파리로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본 영화인 '비포 선  라이즈'의 한 장면처럼(기차에서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비행기에서 혹시라도 내 인연이 옆자리에 앉는 일이 생기진 않을 까 하고 생각 한 내가 조금은 우스워졌다.


첫 번째 기내식이 나올 때쯤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륙 전부터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은 뒤 긴 침묵을 깨고 나온 긴 일본어 문장을 듣자마자 'I am a Korean'과 '와타시와 칸코쿠진데스' 중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고 있는 데 그가 눈치를 채곤 'I'm sorry, can you speak Japanese?'라고 물은 덕분에  이후 대화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이어졌다.




그는 프랑스에 산지 30년이 넘었고 파리를 도쿄만큼이나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친구를 둔 일본인 회계사였다. 일본에서 큰 콘서트를 앞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일본에 다녀가는 길인데 아쉽게도 일 때문에 콘서트는 보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유럽 배낭여행을 꿈꾸던 대학생이고 3학년 2학기를 마친 뒤 휴학 후 여행 경비를 모아 3개월 동안 유럽여행을 할 계획인데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파리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결과 비행기표도 파리행으로 끊었다.


휴학을 결심하고 파리행을 택하기까지의 고민과 3개월간의 여행경비 마련을 위해 약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한 이야기, 그리고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자동차 레이싱 대회에도 나갔지만 진짜 내 진로가 자동차 산업인지는 모르겠다는 이야기들을 약 3만 피트 상공에서 나누는 동안 비행기는 파리로 향했다.


인생에서 후회는 딱 2가지라고 생각해요. 해서 후회하는 것과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 그 둘 중에 저는 항상 'Do'를 선택했어요. Nobou 씨의 말이다


아이도 대화에 끼고 싶었는 지 우리를 한참 지켜보고 있었다

비행기 중간에 있는 팬트리에서 스낵을 먹을 때 그는 파리에서 회계사로 일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파리가 좋아 30년이라는 시간을 머무르고 있지만 언젠가는 파리를 떠나게 될 상황이 올 거라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일본으로 돌아갈 때를 위한 준비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 전부 알 수 있다는 건 거짓이다. 진실은 실제로 보고 느껴야지만 알 수 있다. Nobuo 씨의 대학시절 철학 교수님의 말이다
에너지가 넘칠 땐 경험이 부족했고 경험을 얻으니 에너지가 사라진 후가 되었죠. Nobuo 씨의 말이다


자리로 돌아와 두 번의 기내식을 더 먹으면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고 나는 그가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 같기도 하고 아주 오래 보아온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는 데 바로 그때 그가 이제 파리에 거의 다  도착한 것 같다며 파리에 대해 궁금 한 건 무엇이든 물어볼 기회를 주었다.


나는 파리에서 꼭 가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3가지와 꼭 먹어야 하는 3가지를 물었고 그는 여기에 덧붙여 프랑스에서 알고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3가지 프랑스어 표현을 알려 주었다.



착륙을 알리는 안내 방송과 동시에

짐을 챙겨 입국심사장으로 가면서 많은 인파 속에 그와 나는 헤어졌고 그렇게 3만 피트 상공에서의 인연이 끝이라는 생각을 하니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진 게 아쉬워졌다. 그러고 나서 게이트를 지나 밖으로 나왔을 때 수 많은 마중 나온 사람들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를 보았다. 마치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인 것 같아 보였다.


'샤를 드골 공항은 너무 복잡해서 처음 온 사람들은 길을 잘 못 찾곤 하는 데 혹시나 헤맬까 봐 기다리고 있었어요.' 라며 원한다면 파리 시내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 순간 '이제 나 스스로 부딪혀 보겠다'고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인사하자 그는 내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처럼 인자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여행 잘 하라며, 아름다운 파리를 보고, 느끼고,  경험하라고 했다. 자기는 파리를 30년째 여행 중이라는 말과 함께.


그 후 샤를 드골 공항에서 한 시간 동안 헤매며 그의 호의를 거절한 순간을 한 시간 넘게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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