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추억 vol.3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일본 도쿄를 경유해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는 약 16시간이 소요되는 일정이었고 그는 도쿄에서 파리로 가는 길 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비행기 창가 쪽 좌석을 좋아하지만 이 날이 첫 비행이었던 나에겐 이코노미 클래스의 창가 쪽 좌석은 영화관 맨 뒷줄 가운데 좌석 만큼이나 놓칠 수 없는 자리였다.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짐들이 실리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왼쪽 복도 자리에 중년이라고 하기엔 조금 미안한 Nobuo Hyodo 씨가 자리에 앉았다.
나와 그 사이엔 아무도 앉지 않았고 긴 비행을 조금은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가운데 빈 자리를 보면서 파리로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본 영화인 '비포 선 라이즈'의 한 장면처럼(기차에서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비행기에서 혹시라도 내 인연이 옆자리에 앉는 일이 생기진 않을 까 하고 생각 한 내가 조금은 우스워졌다.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륙 전부터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은 뒤 긴 침묵을 깨고 나온 긴 일본어 문장을 듣자마자 'I am a Korean'과 '와타시와 칸코쿠진데스' 중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고 있는 데 그가 눈치를 채곤 'I'm sorry, can you speak Japanese?'라고 물은 덕분에 이후 대화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이어졌다.
그는 프랑스에 산지 30년이 넘었고 파리를 도쿄만큼이나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친구를 둔 일본인 회계사였다. 일본에서 큰 콘서트를 앞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일본에 다녀가는 길인데 아쉽게도 일 때문에 콘서트는 보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유럽 배낭여행을 꿈꾸던 대학생이고 3학년 2학기를 마친 뒤 휴학 후 여행 경비를 모아 3개월 동안 유럽여행을 할 계획인데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파리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결과 비행기표도 파리행으로 끊었다.
휴학을 결심하고 파리행을 택하기까지의 고민과 3개월간의 여행경비 마련을 위해 약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한 이야기, 그리고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자동차 레이싱 대회에도 나갔지만 진짜 내 진로가 자동차 산업인지는 모르겠다는 이야기들을 약 3만 피트 상공에서 나누는 동안 비행기는 파리로 향했다.
인생에서 후회는 딱 2가지라고 생각해요. 해서 후회하는 것과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 그 둘 중에 저는 항상 'Do'를 선택했어요. Nobou 씨의 말이다
비행기 중간에 있는 팬트리에서 스낵을 먹을 때 그는 파리에서 회계사로 일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파리가 좋아 30년이라는 시간을 머무르고 있지만 언젠가는 파리를 떠나게 될 상황이 올 거라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일본으로 돌아갈 때를 위한 준비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 전부 알 수 있다는 건 거짓이다. 진실은 실제로 보고 느껴야지만 알 수 있다. Nobuo 씨의 대학시절 철학 교수님의 말이다
에너지가 넘칠 땐 경험이 부족했고 경험을 얻으니 에너지가 사라진 후가 되었죠. Nobuo 씨의 말이다
자리로 돌아와 두 번의 기내식을 더 먹으면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고 나는 그가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 같기도 하고 아주 오래 보아온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는 데 바로 그때 그가 이제 파리에 거의 다 도착한 것 같다며 파리에 대해 궁금 한 건 무엇이든 물어볼 기회를 주었다.
나는 파리에서 꼭 가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3가지와 꼭 먹어야 하는 3가지를 물었고 그는 여기에 덧붙여 프랑스에서 알고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3가지 프랑스어 표현을 알려 주었다.
짐을 챙겨 입국심사장으로 가면서 많은 인파 속에 그와 나는 헤어졌고 그렇게 3만 피트 상공에서의 인연이 끝이라는 생각을 하니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진 게 아쉬워졌다. 그러고 나서 게이트를 지나 밖으로 나왔을 때 수 많은 마중 나온 사람들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를 보았다. 마치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인 것 같아 보였다.
'샤를 드골 공항은 너무 복잡해서 처음 온 사람들은 길을 잘 못 찾곤 하는 데 혹시나 헤맬까 봐 기다리고 있었어요.' 라며 원한다면 파리 시내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 순간 '이제 나 스스로 부딪혀 보겠다'고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인사하자 그는 내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처럼 인자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여행 잘 하라며, 아름다운 파리를 보고, 느끼고, 경험하라고 했다. 자기는 파리를 30년째 여행 중이라는 말과 함께.
그 후 샤를 드골 공항에서 한 시간 동안 헤매며 그의 호의를 거절한 순간을 한 시간 넘게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