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의 추억 Vol.33
'실속 있는 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라고 쓰고 '하루라도 젊을 때 묵어야 하는 저렴한 숙소' 또는 '가난한 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라고 읽는다.
아주 오래전, 낡은 가방을 하나 들고 유럽여행을 떠났던 때의 사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사진 한 장은 나로 하여금 참 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3달간의 유럽 여행을 위해 6개월 동안 여행 경비를 모았던 기억. 1유로가 아까워 메뉴판을 보며 한참을 고민하던 기억. 버스비가 아까워 가까운 거리는 그냥 걸어 다녔던 기억. 그럼에도 미술관 티켓박스 앞에서는 과감히(그러나 눈물을 머금고) 지갑을 열었던 기억.
이렇게 수많은 기억을 한 번에 불러온 사진이 바로 이 사진이다.
침대와 아침식사를 포함해 '10유로'라는 놀라운 가격을 자랑한다. 로테르담에는 자동차 레이싱을 보려고 잠깐 들렀던 터라 하루만 자려고 했는데 숙박비가 너무너무 너무 싸서 3일이나 더 머물렀었다.
웹사이트(www.sleep-in.nl)를 통해 확인해보니 현재는 가격이 조금 올랐다. 저 사진을 찍었을 때가 2008년. 자그마치 약 8년 동안 2.5유로밖에 오르지 않았다니!!
만약 '에이 2-30유로만 더 주면 더 훌륭한 숙소에서 잘 수 있는데?'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로운 여행자라면 굳이 저렴한 숙소 정보가 필요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장기간 여행하는, 하룻밤 숙소 요금을 아껴 미술관을 한 곳 더 보거나 두 끼 식사비를 아껴 한 끼의 근사한 식사를 계획하는, 여행자라면 2-30유로가 아니라 당장 2-3유로가 아쉬울 때가 많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그저 그런 세끼를 먹느니 제대로 된 한 끼를 먹겠다'는 신념을 가진 여행자 이기에 1유로, 2유로가 너무나 소중했고, 그때도 지금처럼 고기를 너무나 좋아했기에 다른 경비를 줄여야만 했다.
실속 있는 여행자를 위한 숙소들을 다 소개하고 난 뒤에는 실속 있는 여행자를 위한 식당들을 소개해야겠다.
게다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여행정보가 많지 않은 곳을 여행하고 있다면? 그런 여행자에게 싸고, 안전하고, 깨끗한 침구와 따뜻한 물이 콸콸 나오는 숙소는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은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다.
8년이 지난 지금, 12.5유로에는 여전히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다. 아침식사는 시리얼과 토스트.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정도를 기대하면 적당하다. 무난한 시설과 아침식사 제공도 마음에 들지만 기차역에서 가깝고 전 세계에서 온 백패커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밤이 되면 하나 둘 숙소로 돌아온 여행자들은 소파에 앉아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추억을 쌓는다.
내가 다녀온 여행지와 네가 다녀온 여행지가 같을 때면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여행지에 대한 서로의 감상을 공유하며 긴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내가 다녀온 여행지와 네가 갈 여행지가 같을 때면 그 도시의 지도와 노선도, 다 쓰지 못한 지하철 티켓,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박물관의 브로셔를 건네며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을 최고의 가이드가 되어준다. 트립어드바이저 할아버지가 와도 이 멋진 가이드에 비할바가 못된다.
여행 이야기가 채 끝을 보이기 전에 대화 주제는 이미 음악으로, 영화로, 책으로, 스포츠로, 때로는 지금 나오는 TV 속 글로벌 이슈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도미토리 요금에 시트 사용료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개인 침낭을 가지고 가거나 5유로를 더 내고 빌려야 한다. 주로 저렴한 숙소에서 묵었던 나는 항상 침낭을 가지고 다녔다. 종종 시트가 무료인 곳도 있었지만 배드 버그 등이 걱정돼서 시트 위에서도 꼭 침낭을 깔고 잤다.
샤워실은 칸막이로 되어있는 공용 샤워실이라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갑자기 허리에 수건만 두르고 나오는 남자의 모습에 흠칫 놀랄 수도 있지만 며칠 지내다 보면 익숙하게 인사를 건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숙소 근처에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오래오래 앉아 있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공원도 만날 수 있다.
하루라도 젊을 때 한번 더 가보고 싶은 '실속 있는 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들 1편'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