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로비의 추억 Vol.34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높은 건물과 잘 포장된 도로는 바로 이곳이 '아프리카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중 하나'라는 케냐의 자부심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건물의 꼭대기에서, 수 킬로미터 멀리서 지나가는 사람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크게 걸려있는 우리나라 회사의 광고판은 아프리카 시장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주는 듯했다.
호텔 창문으로 내려다본 도시의 모습은 '아프리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현대적인 가구들, 시원한 바람을 빵빵하게 뿜어내는 에어컨과 언제든 깨끗한 물을 꺼내 마실 수 있는 냉장고가 갖춰진 방안에서 이곳이 아프리카임을 상기시켜주던 얼룩말 그림.
라이온 킹이나 정글의 법칙, 그 보다 이전으로 올라가서 부시맨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나이로비의 모습에 적잖이 놀랄 것이다. 거리를 빼곡히 수놓은 전자제품 광고 판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다니는 깔끔한 정장 차림의 사람들 손에는 저마다 하나씩 휴대폰이 들려있다.
넓은 벌판 사이로 난 도로 위를 달리던 중에 운전기사인 애드윈이 말을 건넸다.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한 차를 약 3시간 정도 타고 오는 동안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았던 그가 '이 지역엔 마사이 족을 만날 수 있다'며 원한다면 잠시 들렀다 가도 된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방문한 마사이족 마을.
큰 키와 긴 다리, 붉은 천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들이 마사이족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정말 정말 높이 뛸 수 있다면서 폴짝 뛰어오르던 모습.
마을 청년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로 들어갔다. 밤에 동물들이 마을을 습격하지 못하도록 사람 키만큼 큰 나무 덤불이 마을 주변을 빙 두르고 있기 때문에 집들은 내부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위치해있다.
나뭇가지로 집의 뼈대를 만들고 흙으로 벽을 만든 형태로 옛날 우리나라의 초가집을 떠올리게 했다. 밤에 모기가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창문은 최대한 작게 냈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민간요법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커다란 나무 껍데기에 여러 가지 풀뿌리와 가지들을 가지고 와서는 '이 뿌리들은 머리가 아플 때 다려 먹으면 좋은 뿌리고 이 나뭇가지들은 배가 아플 때 짓이겨서 즙을 먹으면 좋은 가지들이고...' 이야기를 듣다가 요즘에도 아플 때 이런 것들을 사용하냐고 물으니 빙그레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을에서는 아침마다 불을 피우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설명을 듣다가 불을 어떻게 피우는지 궁금하다고 물으니 마을 청년들이 갑자기 불 피우는 도구를 가져오더니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맨손으로 불을 피우기란 TV에 나오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는지 세명이 둘러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불을 붙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손 사레를 치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시도를 계속하던 청년들은 마침내 작은 불씨가 화르륵 타오르자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가에 있던 기념품 상점에서 다양한 그림들을 보았다. 방금 전 보고 온 마사이족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내 눈으로 본 장면들이 마치 아주 오래전 일인 양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들의 삶은 바로 우리의 곁에도 있기도 하고 곁에 없기도 하다.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를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에 사고 싶었던 작은 그림 한 폭. 왠지 이 그림을 사고 나면 이 곳과의 인연이 영영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기분에 그저 사진에만 담아왔던 나미비아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