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롭의 추억 vol.30
라는 단어를 듣고 떠올리는 장면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 장면이 떠오르실 겁니다.
필리핀 세부 시티에서 남쪽으로 3시간 정도 이동하면 나오는 바닷가로, 바로 여기서 고래상어를 만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먼 바다에 살지만 이곳 오슬롭에는 예전부터 어부들이 주는 먹이에 익숙해진 고래상어들이 해안가로 다가와 오전에 잠깐 얼굴을 비춘다.
아주 이른 아침부터 고래상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바닷가 안내센터에서 필리핀 화폐로 1000페소(약 25,000원)짜리 티켓을 사면 작은 배를 타고 고래상어가 있는 바다로 나갈 수 있다.
이렇게 얕은 바다에 고래상어가 나타나겠어?
라는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앞에 나타난 고래상어.
고래상어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이 있다.
- 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선크림을 바르지 말 것
- 고래상어와 최소 4m 이상 떨어져 있을 것
- 사진 촬영 시 플래시를 터뜨리지 말 것
- 30분이라는 제한시간 동안만 머무를 것
투어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계속 커지는 중이라 언젠가는 고래상어를 이렇게 가까이 보는 것도 불가능 해질지 모른다. 그전까지는 오슬롭을 찾는 사람들이 고래상어를 보호하기 위한 이 최소한의 규칙들을 꼭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온순한 성격인 고래상어는 상상 이상으로 크고, 기대 이상으로 경이로운 모습이었다.
자기 주변을 계속 맴도는 큰 물고기들에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고 새우같이 작은 것들만 큰 입으로 와구와구 빨아들이는 모습이 재미있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같은 바다 속에서 함께 헤엄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를 공격하지는 않을 까?
혹은, 멀리 도망가 버리지는 않을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곳에서 유유히 떠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와 같이 작은 존재는 그에게 있어서 위협은커녕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존재로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사소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의 깊은 고요함과 광활한 차가움마저 느껴졌다.
드넓은 우주를 떠다니는 거대한 우주선 같아 보이기도 하고 지구가 아닌 아예 다른 행성에 사는 생명체 같기도 한 모습을 보면서 순간순간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라고 되뇌며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 마리가 지나가면 또 다른 한 마리가 나타나고 때로는 두세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하고, 잠깐 숨 돌리는 사이 어느새 내 근처로 와서 꼬리를 스치며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 영원과 같던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시간이 다된걸 마치 아는 냥 내가 물밖로 나가기 전에 먼저 등을 돌려 깊은 바다로 헤엄쳐가는 고래상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이대로 사라지지 말고 오래도록 곁에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멸종'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대단하고 강한 존재로 남아 주었으면... 하고 한참을 마음으로 기도했던 오슬롭 고래상어와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