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ie Oct 16. 2015

괜찮다. 그냥 물 한 잔일뿐 그뿐이다.

인도의 추억 vol.6

괜찮다. 그냥 물 한 잔일뿐이다.


아무  말없이도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는 말은 드라마, 영화에서나 하는 말이거나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관용적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날 이전 까지는.


너무 뜨거운 여름 이었고 조금은 지쳐 있었고 시원한 그늘막, 잠시 쉬어갈 자리가 필요했던 날 이었다.




인도 첸나이의 작은 마을을 혼자서 걷고 있었다. 낯선 마을에 대한 호기심에 마을 구석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도 모르게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을 때쯤 혹시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갑자기 엄습해 왔을 때는 이미 나를 집어 삼킬듯한 더위와 습도, 눈부신 태양으로 인해 끈적한 온몸이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발을 한 발작도 떼기 힘들었다. 바로  그때쯤 마치 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라도 한 듯 나에게서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집에서 할머니 한 분이 조용히 걸어나왔다.


작별인사를 하고 나와 아쉬운 마음에 담은 사진




컵이라고 하긴 좀 크고 그릇이라고 하기엔 조금 작은, 이리저리 구겨지고 찌그러진 스테인리스 그릇에 물이 가득 담긴 채 할머니의 손에 들려있었다. 더우니 한 잔 마시라고 건넨 물을 보자 고마움 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먹으면 안 된다고 하던 데', '이 물 깨끗한 걸까?', '아직 일정이 많아 남았는 데 물 마시고 배탈 나면 어쩌지?'. 온갖 걱정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 갔지만 할머니 손에 담긴 그  물 잔을 그냥 지나칠 수 가 없어 망설이던 내 손에는 어느 덧  물 잔이 들려 있었다. 내 표정을 읽었는 지, 어떤 마음에서인지 할머니는 집 안으로  들어와서 해라도 잠시 피하라며 손짓을 했다. 아무  말없이 의사를 전달하는 건 생각보다 꽤 간단하다.

뜨거운 태양을 가리키고 집안을 가리키고 나에게 손짓을 한다. 그거면 충분하다.


순간 또 망설임의 시간이다. 마음속에선 토론이 한창이다. 빛이 하나도 들지 않아 너무 깜깜해서 한 낮 활짝 열린 문으로도 내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집안. 머리는 '안돼. 낯선 사람이야.'라고 말하지만 몸은 이미 '이렇게 인자한 할머니는 만나 본 적이 없는  걸'이라고 하며 이미 그늘을 찾아 집 안으로 향했다.


좁은 통로를 지나

작고 소담한 거실 같은 공간에 다다를쯤 눈은 금세 어둠에 적응하고 주변 사물의 윤곽을 찾아낸다. 거실을 중심으로 연결된 작은 방들이 보이고 아무도 없는 것 같던 방에서 식구들이 하나 둘 나와 인사를 했다.

집 안에 있던 할머니의 아들과 그의 딸


집 안에서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이름을 나누고, 다시 어둠이 눈에 들어오자 갑자기 덜컥 불안해진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 따라나온 할머니의 아들(혹은 사위)은 딸과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며 내 손을 잡아끈다. 사진을 찍으려 내려놓은  물 잔은 아직 물이 한 가득 이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데 내 옆에 그대로 놓인 물 잔이 아쉽다.


 차마 입에 대는 시늉도 못한 채  내려놓은  물 잔에 마음 한 구석이 짠 해 오더니  돌아서자마자 왈칵 눈물이 났다. 그  물 잔에 내가 받은 마음까지 그냥 두고 나온 것만 같아 아쉽고 서운하고,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물 잔을 그대로 다시 집으로 가지고 들어갈 할머니의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뒤를 돌아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냥 마당에 휙 뿌려주었으면. 아무 일도 아닌 양 대수롭지 않게 스쳐 보냈으면... 할머니의 마음을 거기 그대로 두고 온 게 아니라 난 그냥 물 한잔을 두고 온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게 그래 주었으면... 하고 한 참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차마 마시지 못한 물 한잔의 여운이 내내 마음을 적셨던 인도 첸나이의 추억.
매거진의 이전글 10분의 추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