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뇌가 문제라고요?
인듀어; 1. 견디다, 참다, 인내하다
2. 그만두고 싶은 충동과 계속해서 싸우며 현재 상태를 유지하다
편집자 K 과장님과 나는 마주칠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주로 빵 이야기와 운동 이야기를 한다. 그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그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는 데다가 즐겁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나는 복싱과 크로스핏, 요가와 마라톤을 했었고 그는 헬스 PT와 탁구, 필라테스와 마라톤을 한다. 우리가 겹치는 종목은 마라톤이라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자주 하는데 그와 연희동에 있는 우동 맛집에서 바지락 우동을 먹던 도중 최근에 『인듀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다가 급기야는 우리 집 주소를 불러보라고 했다. 앉은자리에서 곧바로 책을 주문해 우리 집으로 보낸 것이다. 그 책은 일처리 빠른 인터넷 서점의 당일도착 시스템 덕분에 그날 밤 도착했다. 사실 『인듀어』는 내가 잘 읽지 않는 자기계발 느낌의 유사 벽돌책 비주얼을 갖고 있어서 3주 정도 책장에만 꽂아놓고 적당한 부채감을 갖고 지냈다. 회사에서 그를 마주칠 때면 그의 얼굴이 먼저 보이는 게 아니라 저 멀리서 인듀어 표지가 걸어오는 느낌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펼쳤다.
나는 러너다. 잘 달리는 것은 아니고 꾸준히 조금씩 달리고 있는다. 그래서 러너라고 말하기 조금 민망할 때가 있으나 마라톤 대회에 여러 번 나갔고 하프 마라톤에 참가한 적도 있으니 덜 민망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걷기와 뛰기를 워낙 좋아해서 무리한 나머지 발바닥에 있는 종자골이라는 뼈가 골절된 뒤로는 달리는 횟수가 줄었지만 일이나 생활에서 답답함을 느끼면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당신은 그만두고 싶은 충동과 맞설 힘이 있는가?”라는 띠지 문구가 달리다가 힘들어지면 쉽게 포기하는 나의 죄책감을 자극하는데 이 책의 저자인 알렉스 허친슨은 달리기 선수 출신 물리학자다.(이보다 더 신뢰가 갈 수 있는 이력이 있을까?) 인간의 한계를 정하는 것은 신체적인 조건, 심장이나 폐, 근육이 아니라 사실은 뇌라는 논쟁에서 시작해 심리학과 뇌과학의 관점에서 살펴보며 지구력에 대해서 탐구한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정말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온다. 도저히 못 뛰겠다고, 이 이상 뛰는 것은 무리인 것만 같은 순간. 하지만 그 순간만 넘기면 정말 신기하게도 더 뛸 수 있는 마법같이 평온한 상태가 찾아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은 한계를 쉽게 정해버리지만 사실 한계를 초월했던 사람들의 기록을 나열하며 결국 육체와 정신의 조화가 중요하고 이를 운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지구력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인듀어’를 적용해 ‘인듀어, 인듀어…’를 외치며 노력을 했으나 내 독서 지구력은 따라와 주지 못했다. 그래도 절반은 읽었으니 적어도 K 편집자를 마주칠 때마다 그의 얼굴이 표지로 보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