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치는 눈 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는 알지 못한다.
나는 그를 등산 모임에서 처음 보았다. 그날 등산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인터넷 산악회 카페 회원 약 10인 정도였다.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모두 초여름의 햇살을 피해 눈을 가리거나 입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노안이 시작된 나에게는 몇 발치 밖 사람들의 눈코입을 구분하는 것 조차 꽤 어려운 일이 되고 있었다.
산을 절반쯤 오를 때까지 나는 그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바위에 기대어 서 있거나 그늘에 대충 터를 잡을 때도, 그는 마치 영화 촬영 현장의 주연 배우처럼 자신의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무표정한 얼굴로 먼산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자신의 체온 변화에 무척이나 까탈스러웠다. 그는 쉴 때는 긴팔 점퍼를 걸쳤다. 그리고 다시 행군이 시작되면 점퍼를 벗어 가방에 걸었다. 이 프로세스는 한 번의 누락도 없이 등산을 지속하는 약 6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유를 물으면, 자신은 추위를 잘 타기 때문이라고 했다. 추위에 약한 그가 반바지를 입고 있었던 것은 설명이 가능하다. 가열된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온다. 이것을 대류현상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기까지 생각하다 멈췄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 이상의 과학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등산 교과서에 쓰인 텍스트가 사람이 된 것처럼 그는 스틱을 펴고 접고 걷고 앉고 쉬고 또 체온을 유지하고, 수분을 채웠다.
모두가 둥글게 앉아 점심을 먹는 시간. 나는 우연히도 그의 옆에 앉았다. 이것은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옆에서 본 그의 다리는 공을 들여 닦은 원목 가구처럼 반질 반질했고, 꽤 탄탄해 보였다. 나는 이렇게 증언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남자가 가진 내면의 성정과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고, 겉에서 보이는 것에 현혹되고 말았다. 그렇다. 나는 얼빠인 것이다.
그와 나눈 대화는 딱 두 마디뿐이다. 그마저도 한 마디는 대화라고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과 하는 이야기를 옆에 있다가 얻어 들었을 뿐이었다.
“여기에 쓰레기 넣으세요.”
나는 ‘내 손을 잡아 주세요’라는 말을 들은 여자처럼 다소곳하게 손을 모아 쓰레기를 봉투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이 대화에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나는 내가 가진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나 관심, 또 산에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파렴치한 놈들에 대한 경고, 분노 같은 것들로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도 있었지만, 내 자아가 그러면 안 된다고 나를 막아섰다. 잘 참았다, 나 자신.
나는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하는 데다가 컨디션도 좋아서 별로 힘을 들이지도 않고 북한산을 올랐다. 이것은 백수가 가진 힘일지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미친 여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짐을 들어주며 나는 에너지가 남아 있는 자의 여유로운 미소와 배려 넘치는 제스처까지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하산하는 길.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뒤풀이를 했다. 이번에도 우연히 나는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다. 옆을 보니 그가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의 목소리는 꽤 두껍고 유쾌하게 들렸던 것 같긴 하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땀을 한 바가지나 흘렸고, 딱 그만큼의 생맥주를 위장에 드리붓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2차로 발걸음을 옮길 때 그는 깔끔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휴대용 의자를 검색하고 있었다. 웬일인지 이제부터 나도 제대로 된 의자에 앉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악회 카페에 의자를 추천해 달라는 글을 올려보았다. 예상대로 그의 댓글이 달렸다.
됐어!, 걸려들었어!
그는 자신의 댓글을 보충하기 위해 긴 설명의 쪽지까지 보내왔다. 그는 의자 마니아였다. 그러나 긴 쪽지의 끝에는, 자신이 쓰지 않는 의자가 있으니 원한다면 다음 모임에서 그것을 주겠다고 쓰여 있었다. 뜻밖의 친절과 횡재에 나는 몹시 놀랐다. 그의 집은 필시 각종 의자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아이고 감사합니다’로 시작되는 답장을 보냈지만, 두 달째 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등산을 갈 때마다 흙바닥에 앉아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나는 휴대용 의자라는 내 인생의 커다란 결핍을 느낀다. 내 장바구니에는 이미 마음에 드는 의자가 들어가 있지만, 아직 구매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모든 짝사랑이 그러하듯 나의 일상은 '단 한번 보았던 그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의자'를 상상하고 기다리는 일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아직 그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새삼 허망함을 느낀다.
짝사랑은 시작하는 동시에 끝이 쓰인다. 그러나 아직은 그를 기다리는 것을 멈출 수 없다.